사람들은 나를 대청호 ‘숨 지킴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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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대청호 ‘숨 지킴이’라 부른다
  • 박금자기자
  • 승인 2020.06.11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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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나그네의 휴식 공간 ‘전망 좋은 집’
‘정석과 포석의 바른 길’ 안내자 되고 파

 

타인의 삶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지을 줄 알아야 한다. 내 집을 지나치는 사람들의 인생을 엿보려 하지 않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전망 좋은 펜션·카페·휴게소’를 운영하는 한영수 대표(63)의 손님을 위한 철학이다. 더운 여름날 길을 지나는 나그네가 무심코 앉아 쉬어가는 느티나무 아래 그늘 같은 군북면 소정리 끝자락, 한 대표의 휴게소에서 그를 마주했다.
 
△타고난 서비스 맨
“아저씨!”
“예~! 어서 오세요. 오늘 날씨 덥죠? 이쪽 그늘로 오세요. 바람이 시원해요!” 멀리서부터 손님이 부르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간다. 여기까지는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손님을 맞는 태도이다. 한 대표는 다르다. 뭔가 다른 것이 분명히 있다. 미소였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안정감을 준다. 전망 좋은 대청호 휴게소에 쉬러 오는 사람 누구나 그의 편안함을 꼽으며 한 대표는 손님을 위해서라면 휴게소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손님이 앉아 있는 자리까지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서도 신속하지만 바쁘지 않은 안정감이 엿보여 편안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 곳에 가면
“자갈자갈자갈” 주차를 하기 위해 그 곳에 들어서면 길 위의 수다쟁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자동차 바퀴를 타고 들려온다. “자갈자갈자갈”

대청호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음악이 물처럼 흐르면 나뭇잎이 재잘재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바람은 헤실헤실 웃는다. 나무 그늘 사이로 반짝이는 조각 볕이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넘실댈 때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백수를 눈앞에 둔 노인이 대청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숨 쉬러 여기에 와, 맞은편 산속의 맑은 공기가 저 물속 숨길을 따라 내게로 오거든, 주인 양반은 내 숨을 지키는 사람여!” 노인은 “일주일에 한번 이 곳에 들러 천 번의 심호흡을 하고 가는 쉼터”라고 한다.
 
△걸어온 길
한 대표는 어린 시절을 충남 대둔산 자락에서 보냈다. 부친의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들을 한 대표가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호통 한번 치지 않고 의견을 존중하며 진로에 대해 강압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학창 시절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리더십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학도호국단장을 지낸 일이다. 4·19혁명 이후 폐지됐다가 유신체제 이후 다시 부활한 학도호국단은 우리나라 남자 고등학생이면 누구나 학생자치 명목과 ,나라에 긴박한 일이 발생될 것에 대비 군사 훈련을 받을 때이다. 애국이 뭔지 호국이 뭔지도 모를 나이에 사상훈련을 하던 친구들에게 단장으로 추대돼 진자리 마른자리를 우직하고 책임감 있게 학우와 쌓은 우정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지금도 학우들 모임에서는 “그 때와 똑 같은 친구”라며 한 대표의 한결같음이 회자된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제약회사에 몸담았을 때도 빛나는 아이디어와 솔선수범으로 승진도 빨랐다고 한다.
 
△봄꽃처럼 예쁜 나의 보물들
“아내(노순애‧61)를 처음 만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서천군청에 근무하던 아내는 눈이 크고 귀여운 외모로 근처에 소문이 자자했다. 작은 동네다 보니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서로 오가던 이웃이긴 했지만 일이 바쁜 성인들에겐 그냥 소문일 뿐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이십대 중반의 어느 꽃피는 봄날, 중매가 들어 왔는데 상대가 아내였다. 데이트를 위해 군산 월명공원을 찾았는데 첫 대면, 그 어색함이 정적만 흐르기에 충분했다. 그 때, 비둘기 떼가 날아들어 둘의 주위를 맴돌았다. 신기한 광경에 놀란 것도 잠시, 첫 만남을 위해 한껏 멋을 내고 나온 둘의 몸 여기저기에 비둘기 분변이 묻어났다. 어색하던 둘은 폭소했고 웃는 모습이 예쁜 아내에게 한 대표는 그 자리에서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라며 아내를 향한 사랑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결혼 후 딸 아이 둘을 낳았다. “송이(현대그룹 재직‧35)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대기업 홍보부에서 근무하고, 슬기(한국교육문화원‧30)도 원하던 직장에 근무하고 있어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소중한 봄꽃처럼 예쁜 보물들”이라며 한 대표의 아빠 미소가 귀에 걸린다.
 
△어려움도 내 인생의 한 부분
30년 전 그가 자리 잡은 이곳은 보은에서 옥천으로 들어서는 구도로의 길목이었다. 지인들은 대청호 물가인 이곳에 둥지 트는 것에 반대했지만 한 대표는 ‘하늘과 땅, 대청호가 있는 한 여기는 명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205평 땅을 매입해 컨테이너 하나로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 믿음이 행운으로 이어 지기 시작한 것은 당시 옥천농고 영농농고생들과 실습경작을 시작한 딸기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옥천의 나들목인 이곳으로 보은사람, 옥천사람, 대전, 심지어 경상도 사람들도 많이 지나 다녔고 딸기는 대박 상품으로 이어졌다.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한 대표는 ‘신토불이농원휴게소’라는 상호를 걸고 구운 계란, 멜론 등 장사가 될 만한 농산물을 팔기 시작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잠을 잘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이후 커피를 팔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길카페’란 상호를 다시 지어줬고 그들의 고견을 존중, 오래도록 상호를 유지해 왔다. 현재 운영 중인 ‘전망좋은펜션·카페·휴게소’는 12년 전 건물을 지으면서 바꿨다. 장사를 해 번 돈으로 토지를 늘려 3000평이 되었지만 그 중 1500평은 국도로 편입돼 고스란히 헌납했고 남은 땅으로 이만큼 일구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고 했다. 그 또한 소중한 기억이었고 힘들 때마다 가족의 응원이 힘이 됐다고 말하며 대청호 쪽으로 급히 얼굴을 돌렸다.
 
△이유 없이 옥천이 좋다
옥천군에서 발행한 옥천홍보 책자가 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를 통해 가져가는 책이 1년 동안 무려 천권을 넘는다고 한다. 손님 중에는 책이 없으면 기억해 뒀다가 재방문했을 때 요구하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옥천군을 위해 도움이 되어 좋다고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사)한국소기업소상공인연합회 충북지부 부회장, 옥천군주민자치협의회 전 부회장, 군북면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그가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직함이다. “지금은 힘에 부쳐 많이 내려놓았어요. 내가 원한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 합니다” 한 대표의 아내는 남편이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이제 좀 편히 쉬어도 될 텐데... 남편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한 대표 스스로도 일거리가 쌓여 밤낮으로 바쁠 때면 자신이 주경야독하는 사람 같아 허허실실 웃을 때가 있다고 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라
“요즘 세상은 잘났으면 잘났다, 잘했으면 잘했다, 자랑도 좀 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사람이 끊이질 않더라구요?” 한 대표는 요즘 풍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정작 봉사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나서지 않고 누가 보든 말든 열심히 땀 흘린다”고 말한다. 그도 그런 생각으로 주위와 협력할 때가 많다며 안 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기대치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 실망하는 사람을 위해 ‘정석과 포석의 바른 길’을 안내하는 진정한 옥천사람들의 이웃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그래야만 나눔도 배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 대표의 땀방울 맺힌 이마에 초여름 햇살이 내려 앉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전망 좋은 집 휴게소&카페
전망 좋은 집 휴게소&카페
전망 좋은 집 풍경
전망 좋은 집 풍경
산책중 활짝 웃는 한영수 대표 부부
산책중 활짝 웃는 한영수 대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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