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러다 큰일 나겠어. 시골로 갑시다” 남편 배용기(충북 옥천읍 옥각리·73) 씨의 제안에 이향남(70) 씨가 충북 옥천으로 이사 온 지도 만 3년째다. 원래 서울 대치동에 살았던 이 씨 부부는 중년의 나이에 대전의 비래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대전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화장실에서 집안일을 하던 이 씨의 눈앞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곧바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그녀의 나이 46세였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던 이 씨는 말 그대로 화장실에서 “기어 나왔다”고 전했다. “여보, 구급차 좀 불러줘” 그렇게 실려 간 병원에는 MRI 기계가 없어 서울로 올려 보냈고 서울에선 뇌출혈이라고 했다. 곧바로 수술한 탓에 마비 온 곳도 없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두 번째 고비는 환갑이 지나서 발생했다. 이 씨의 신장 기능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또 한 번의 대수술을 마친 이 씨에게 남편 배씨가 “시골로 가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옥천의 옥각리 각신마을 조그마한 밭을 사 정착했다. 무도 심고 복숭아나무도 심고 매실나무도 심었다. 혹자는 “주말농장 하냐”고 할 만큼 농사일에 전전긍긍하는 편은 아니지만 “둘이 먹고 살만큼은 나온다”고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중단됐지만,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노인회관에서 식사를 준비하며 용돈 벌이도 하고 동네 사람도 사귀었다. 이 씨는 “옥천에 와서 잠을 너무 잘 잔다”고 밝혔다. 대전에서는 잠을 자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안 왔는데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서 그런지 잠이 절로 온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2~4개월 간격으로 받는 건강 검진에서도 결과는 항상 ‘정상’이다.
요즘 이 씨의 락은 마을 정자에 모여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다. 비록 코로나의 여파로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노인회관도 들어갈 수 없지만 이 씨는 오늘도 공기 좋고 사람 좋은 옥천에서 행복하다. 이 씨의 ‘옥천에 살어리랏다!’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