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면 햇살은 어느덧 묵직해지고 살랑이던 바람마저 훈훈한 기운을 품기 시작한다. 이맘때가 되면 몸은 계절의 변화를 먼저 알아채고 쉬이 나른해지기 마련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에서 선조들이 제철 음식을 챙겨 먹었던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맞추며 살아가기 위한 지혜였다. 그 지혜의 한가운데 오랜 세월 서민들의 든든한 벗이 되어준 식재료가 있다. 논둑과 개울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던 미꾸라지다.
어린 시절 논바닥에 손을 넣어 미끈한 놈을 잡아 올리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꾸라지라는 이름만으로도 흙냄새 섞인 여름 한때가 떠오를 것이다. 이 작고 투박한 물고기가 보양식의 자리를 차지한 데에는 까닭이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미꾸라지를 두고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며 독이 없어 비위를 보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적혀 있다. 소화기의 기운을 덥혀주어 술독을 풀고 갈증을 다스리는 데도 쓰였다고 한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도 미꾸라지가 ‘양기를 돋우고 원기를 북돋우는 온평한 식재료’라 기록하고 있으니 동양의 옛 의서가 한목소리로 보증한 셈이다.
오늘날의 영양학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꾸라지는 칼로리가 낮으면서도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히 칼슘 함량이 동물성 식품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고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D까지 함께 들어 있다. 머리부터 내장, 뼈까지 통째로 고아 먹기 때문에 영양 성분이 고스란히 국물에 녹아든다. 뼈가 약해지기 쉬운 나이에 이보다 반가운 식재료도 드물다. 여기에 위 점막을 보호하는 뮤신 성분과 관절 연골에 좋은 콘드로이친까지 품고 있으니 작은 몸집에 담긴 것이 참 많다.
다만 아무리 좋은 보양식도 궁합을 살펴야 한다. 고단백·고지방 식재료인 미꾸라지를 섭취한 직후 복숭아를 먹는 것은 금물이다. 복숭아의 유기산 성분이 췌장 소화 효소의 기능을 떨어뜨려 급성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끈적이는 뮤신 성분이 풍부한 마와 동시에 복용하면 과도하게 형성된 점막이 소화액 분비를 방해해 속 더부룩함이나 복부 가스 팽만을 일으키기 쉬우므로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유난히 지치고 나른한 초여름, 몸이 보내는 신호를 그냥 넘기고 있다면 미꾸라지 한 그릇을 권한다. 예전에는 논바닥을 헤치며 잡아 올려야 했지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동네 어디서든 추어탕집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시대다.
뚝배기째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추어탕 한 그릇. 투박하지만 깊고 진한 그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메마르던 몸 안쪽이 천천히 젖어 드는 것을 느낀다. 거창한 보약이 아니라 한 그릇의 밥상이 주는 위로다. 오늘 저녁 그 위로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