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흔들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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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흔들리기 전에
  • 전상인 국회부의장 수석비서관
  • 승인 2026.07.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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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묻습니다, 충북과 옥천은 안전할까요


지난 6월 24일,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가 무너졌습니다. 규모 7.2의 지진이 땅을 흔든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규모 7.5의 더 큰 지진이 잇따랐습니다. 베네수엘라 당국 집계로 1,400명이 넘는 분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지고 수만 명의 생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1900년 이후 가장 강한 지진이라고 합니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카라카스의 잿빛 먼지와 울음소리는, 멀고 낯선 나라의 일이라기엔 우리 마음을 너무 오래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조심스레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그 땅이 우리의 땅이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지진은 태풍과 다릅니다. 며칠 전부터 길목을 내다보고 대비할 수 있는 재난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과학으로도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크게 올지는 아직 정확히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일본도, 튀르키예도, 이번 베네수엘라도 그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미리 알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입니다. 평소에 준비하고 거듭 익히고 미리 대비하는 것입니다. 지진만큼은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준비한 만큼 우리와 우리 이웃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두려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막연한 불안을 차분한 준비로 바꾸어 보자는, 이웃으로서 드리는 작은 제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전할까요. 안타깝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2016년 경주에서 규모 5.8, 2017년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한반도를 흔들면서 ‘우리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오랜 믿음은 이미 흔들렸습니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디지털 관측이 시작된 1999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해마다 평균 70여 차례 관측되고 있습니다.

충북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상청 계기관측 이래 충북에서 가장 강했던 지진으로 기록된 것이 바로 1978년 보은 속리산 부근에서 일어난 규모 5.2의 지진입니다. 그 뒤로도 땅은 조용하지만은 않았습니다. 2022년 괴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일어나 그해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되었고 2025년에는 충주(규모 3.1)와 증평(규모 2.2), 그리고 옥천(규모 3.1)에서 사람이 몸으로 느끼는 지진이 잇따랐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한 해 동안 충북에서만 세 차례의 체감지진이 기상청 공식 기록에 올랐습니다. 

그 한가운데 옥천이 있습니다. 지난해 추석,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차례를 지내던 한낮에, 옥천 동쪽으로 약 17㎞ 떨어진 땅속 9㎞ 지점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충북 일부에서 진동이 또렷이 감지되었고 발생 당시 기준으로 그해 한반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지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2011년에도, 2015년에도, 그리고 2023년 봄에도 옥천의 땅은 조용히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거듭되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옥천에서 괴산, 단양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옥천 습곡대’는 오래전 지각이 변동하며 단층이 발달한 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이 일대의 단층과 최근 지진의 위치가 가깝다고 봅니다. 더욱이 지난해 옥천 지진이 일어난 곳은 1978년 속리산 지진의 진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같은 권역입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그 일대 반경 약 50㎞ 안에서 규모 2.0 이상의 지진이 130여 차례 이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늘 조금씩 숨 쉬는 땅 위에 정겨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작은 흔들림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아직’이라는 말에 마냥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그 단층도 1641년, 1812년, 1900년… 수백 년의 긴 침묵 끝에 깨어났습니다. 땅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온하다고 느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발밑의 땅은 제 나름의 시간을 묵묵히 쌓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준비는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부터입니다. 학교와 마을회관, 보건지소와 관공서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공시설의 내진 성능을 하나씩 점검하고 보강해 가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 지역 단층에 대한 꼼꼼한 조사와 국가지진위험지도 반영을 더는 미루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결국 튼튼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몸에 밴 행동 하나입니다. 흔들리면 책상이나 식탁 아래로 몸을 낮추고 흔들림이 멈추면 문을 열어 출구를 확보한 뒤 계단을 이용해 넓은 곳으로. 이 단순한 행동요령이 몸에 익어 있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생명이 지켜집니다. 평소의 훈련 한 번이 위급한 순간을 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의 형편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많은 마을에서는 이웃이 이웃의 손을 잡아 함께 대피하는 ‘마을의 약속’이 그 어떤 첨단 장비보다 든든한 안전망이 됩니다. 경로당과 마을 단위의 작은 대피 훈련 그것이 우리 같은 농촌이 가장 먼저 갖출 수 있는 안전이라고 믿습니다.

지진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우리의 준비로 분명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평소의 대비와 단 한 번의 훈련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아픔 앞에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위로는, 같은 슬픔을 우리 땅에서 되풀이하지 않도록 오늘 작은 준비를 시작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흔들린 뒤에 준비하면,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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