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에서 ‘멍에’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멍에를 멘사람, 벗은 사람, 없는 사람 등에 대한 설교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의로운 멍에, 죄의 멍에, 신앙의 멍에, 사람 도리의 멍에 등등 여러 가지 멍에가 있지만 나는 멍에 하면 제일 먼저 소가 생각난다.
지금이야 농사를 짓는데 농기구들이 워낙 다양해서 소가 필요 없지만 육칠십년 대만 해도 농사를 짓는 집에는 당연히 농우소가 필수였다. 짐을 나르거나 논밭을 갈 때에 소가 없이 일을 추어내기에는 한계가 따랐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남의 소를 데려다 하루 일을 부리는데, 사람이 이틀을 품앗이로 일을 해주어야 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소를 사람 대하듯 했다. 먹이는 것도 여름에는 시원하게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게 소죽을 끓여 먹이고, 잠자리까지도 짚으로 폭신하게 해 주었다. 시골 태생인 나는 소에게 남다른 애틋함이 있다. 느리기는 하지만 크고 둥그런 눈을 끔뻑거리며 사람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거부하지 않고 순종하는 소와 어린 시절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람보다 소를 앞장 세웠다. 이랴(앞으로 가라), 어저저(좌로 가라), 일러로(우로 가라), 워워(서있어라) 주인의 명령에 따라 말을 알아듣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소도 생각이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목에다 멍에를 걸고 등에다 길마를 얹으면 일을 하러 가는 것을 알고,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우며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새끼를 낳아 팔러 가는 날에는 아침부터 먹이도 먹지 않고 송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송아지를 장에 내다 팔고 오면 젖이 퉁퉁 불어 오르고 젖을 먹일 시간이 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음매음매’ 며칠 동안 목이 쉴 때까지 송아지를 찾으며 우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도 소를 따라 같이 울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부리는 소에게나 쓰이는 것이 멍에인 줄 알던 굴레가 사람에게는 더 많은 굴레와 멍에가 지워진다는 것을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율법이란 굴레 안에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도리 자식이나 가족 타인에게 본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누를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의 가장 무거웠던 멍에는 벗어 놓은 것 같다. 생활 전선에 나가 세상과 맞부딪치며 해야 할 부모 역할, 아이들 양육이란 멍에를 벗어놓고 나니 삶이 이렇게 가뿐할 수가 없다. 사람도 소처럼 힘 있고 젊었을 때에는 짊어져야 짐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나보다.
그러나 아직도 어른, 어머니, 또 할머니라는 굴레가 어깨 지그시 누르긴 한다. 여태까지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남은 생을 고집 센 노인이 아니라 지혜롭고 현명한 어르신으로 마무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