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읍내 커피숍에 들렀다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앞에 계시던 어르신이 주문 기계, 이른바 키오스크의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 보셨습니다. 그러다 “아이고, 됐다. 그냥 갈란다” 하시며 돌아서셨습니다. 뒤에 줄이 늘어선 게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커피 한 잔 드시러 나오셨다가 마음만 상한 채 돌아가시는 뒷모습이 며칠째 눈에 밟혔습니다.
요즘 우리 동네가 딱 그렇습니다. 옥천 읍내든 면 소재지든 커피숍은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얼굴을 보고 주문하던 자리에는 화면이 들어섰습니다. 식당에 앉으면 태블릿부터 만져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접수기에서 번호표를 뽑아야 합니다. 기차표 예매와 은행 업무도 휴대전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건 어르신 잘못이 아닙니다. 가게 주인 잘못도 아닙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해 기계를 들여놓은 가게가 태반입니다. 그렇게라도 문을 여는 게 요즘 시골 가게의 형편입니다. 저도 처음 가는 식당에서 화면을 누르다 뒤로 갔다가 앞으로 갔다가 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오늘 딱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공지능은 도시 젊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줄어드는 우리 같은 시골에 오히려 먼저 닥친 일입니다. 지금 배우기 시작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지난 8월 하순 열린 국무회의에서 복지·안전·세금·농업·식약 등 다섯 개 분야에 인공지능 상담 창구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2027년부터는 정부24와 국민비서를 하나로 묶어 안내할 계획입니다. 며칠 뒤에는 국민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할 회사 세 곳도 선정했습니다. 우리가 배우든 배우지 않든 올겨울이면 우리 휴대전화 안에 인공지능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마침 국회도서관은 얼마 전 ‘금주의 서평’을 통해 공경철이 쓴 『로봇의 미래』를 소개했습니다. 저자는 카이스트에서 ‘입는 로봇’을 연구하는 공학자입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다시 걷게 하는 로봇을 만들어 왔습니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상상력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 길을 현실로 이어 주는 것은 결국 ‘기술’이라는 영역이다.”
화면 안에 갇혀 있던 인공지능이 이제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인공지능이 엑스레이와 CT 영상을 먼저 판독합니다. 들녘에서는 드론이 농약을 칩니다. 온 식구가 사흘 동안 매달릴 일을 반나절에 끝냅니다. 축사에서는 자동 급이기가 돌아갑니다. 하우스에는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장치가 설치됐습니다. 식당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나릅니다.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은 사람처럼 걷는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손해이기만 할까요? 저는 정반대라고 봅니다. 오히려 우리 같은 동네에 더 필요한 기술입니다.
우리 동네에 가장 아쉬운 게 무엇입니까? 바로 일할 사람입니다. 자식들은 도시로 나갔습니다. 품삯을 주고 사람을 부르려 해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경제 연구기관들은 일할 나이의 인구가 2030년까지 해마다 30만 명씩 줄어들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후 2040년까지는 해마다 50만 명씩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기계가 사람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 채우지 못하는 자리를 메워 주기도 합니다. 어르신들이 인공지능과 로봇을 잘 활용하도록 돕는 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책에는 나라마다 로봇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미국은 일을 시키는 기계로 봅니다. 일본은 만화 속 아톰처럼 친구로 여깁니다. 우리나라는 아이언맨에 가깝게 본다고 합니다. 사람이 입고 힘을 얻는 로봇입니다. 허리가 아파 들지 못하는 물건을 대신 들어 줍니다. 눈이 어두워 읽지 못하는 글을 대신 읽어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기술 아닙니까.
물론 조심할 것도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이봐, 이것 좀 어떻게 해 줘 봐.”
신분증을 건네며 말씀하십니다.
“알아서 해 줘. 비밀번호도 알지?”
수십 년을 이웃으로 살아온 인심입니다. 저도 그 인심을 먹고 자랐습니다. 다만 요즘은 그 정을 노리는 사기 전화가 부쩍 늘었습니다. 누군가를 의심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서로 지켜 주자는 뜻입니다. 비밀번호와 인증서만큼은 본인이 관리해야 합니다. 헷갈리면 자녀나 담당 직원에게 한 번 더 물어보십시오. 인공지능이 알려 주는 내용도 틀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일은 반드시 사람에게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흉이 아닙니다.
이제 가장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올해는 한 번 배우러 나가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디지털 활용 수준을 100으로 놓았을 때 어르신들의 수준은 71 정도입니다. 낮아 보이지만 해마다 오르고 있습니다. 배우면 나아진다는 뜻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벌써 시작했습니다. 대구에서는 경로당 83곳을 찾아다니며 스마트폰과 주문 기계 사용법을 가르칩니다. 경북 칠곡에서는 마을회관에서 한글을 깨치신 어르신들이 인공지능을 배우고 계십니다. 예순이 넘어 글을 배우신 분들입니다. 그분들도 하시는데 우리가 왜 못 하겠습니까.
처음에는 누구나 헤맵니다. 저도 헤맵니다. 그러나 서너 번만 눌러 보면 손이 먼저 기억합니다. 자전거를 배우던 때와 같습니다. 넘어져 봐야 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제안드립니다.
첫째, 경로당과 마을회관에 연습용 화면을 한 대씩 두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돈이 빠져나가지 않는 기계로 커피도 주문하고 서류도 떼어 보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열 번, 스무 번 눌러 보면 손에 익습니다.
둘째, 먼저 배운 어르신이 옆집 어르신을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교육을 맡기면 고향에 머물 일자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셋째, 드론과 하우스 장비처럼 값비싼 물건은 여럿이 나눠 쓰면 됩니다. 농기계를 빌려 쓰듯 장비와 사용법을 함께 지원하면 작은 농가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넷째, 방학 때 손주가 할머니께 휴대전화 사용법을 가르쳐 드리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떨까요. 학교와 경로당이 함께하면 됩니다. 가르치는 아이도, 배우는 어르신도 얼굴이 환해질 것입니다.
다섯째, 기계가 아무리 늘어도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는 창구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합니다. 기계를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뒤로 밀려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나이가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져도 정지용 시인이 노래한 실개천은 여전히 그 자리를 흐릅니다. 기술은 앞서가도 좋습니다. 다만 사람의 걸음을 너무 멀리 앞질러 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느린 사람을 기다려 주는 동네가 오래갑니다. 모른다고 편히 말할 수 있는 동네가 오래갑니다.
로봇이 논에 들어오고 인공지능이 사무실에 들어와도 논둑에 앉아 새참을 나눠 먹는 일만큼은 끝까지 사람의 몫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 인심이야말로 옥천이 오래도록 지녀 온 가장 값진 기술입니다.
올가을에는 마을회관에서 함께 인공지능을 배우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인공지능,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배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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