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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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 지옥임 수필가
  • 승인 2026.10.2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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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버스가 끊겼을 법한 늦은 시간이다. 싸늘한 바람이 스치는 정류장에 홀로 서 있노라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고요하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도시의 적막뿐이다. 가끔씩 스산한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는 낙엽들만이 이리저리 나뒹굴며 마지막 가는 길이 아쉬워 몸부림치는 듯하다. 마지막 남은 낙엽 한 잎이 떨어져 빙그르르 돌며 가로등 불빛 아래 내려온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데굴데굴 굴러 내 발밑에 와서 멈춘다. 살며시 발을 내밀어 떨어진 낙엽을 살짝 밟아본다. 순간 낙엽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이런 대접을 해서야 되겠나 싶어 불편한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내밀어 낙엽을 집어 들었다.

혼자 가기 서러워서 이 늦은 시간에 날 찾아 왔나보구나, 그래 서러워 마라 마지막 가는 길에 내가 배웅해 줄게, 생명이 있는 한 거쳐야 할 관문이란다. 너와 나의 만남이 너무 짧아 아쉬움이 남는다면 먼 훗날 다시 만나 긴긴 얘기 나누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른 집에 가서 아내노릇 엄마노릇 해야지 씩씩하게 집안일을 걱정했다. 한순간 내 앞에 나타난 한 잎의 낙엽이 말을 걸어오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외로움과 서글픔이 비집고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과의 이별만이 슬픈 것이 아니다. 계절따라 모든 만물들과의 이별이야말로 가슴속 깊은 데서부터 서러움을 느끼게 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다. 옆집에 살던 친구 엄마가 젊은 나이에 중병이 들어 앓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친구의 엄마는 속이 답답했는지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도 앞산 뒷산에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었다. 마당가에 살구나무와 감나무 잎사귀가 스산한 바람에 허공을 맴돌며 이리저리 떠다니다 땅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이 장면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친구 엄마는 본인이 떠날 날을 예견이라도 한 것일까? 어찌나 섧게 울던지 친구도 울고 나도 따라서 같이 울었다. 친구의 엄마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고 다시는 못 올 먼길을 떠났다. 그때 친구의 엄마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만 나이가 드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 후 여러 형제들과 어디론가 떠나버린 친구가 긴 세월이 흘렀지만 이맘때쯤이면 생각이 난다. 잊고 사는 날이 더 많았는데 수십 년 전에 떠난 엄마 생각도 난다. 푸르디푸른 젊은 나이에 떠난 쌍둥이 같던 동갑나기 사촌언니도 아련히 그리워진다. 남달리 심하게 가을을 타는 까닭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곁에 있는데도 가슴이 텅 빈 것 같다.

이 저녁뿐이 아니다. 사춘기에 시작한 이 감성은 해마다 입추가 다가오는가 싶으면 달력을 보지 않고도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음을 마음으로부터 느낀다. 수십 년간 어김없이 가을은 허무하다. 소녀시절의 그 감성이 참 오래도 간다. 서산에 넘어가는 해그림자가 안산 허리에 걸리면 그냥 울고 싶어진다. 스산한 바람이 불면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혼자서 훌쩍 떠나고 싶다.

인적이 끊어진 퇴근길 늦은 가을, 이 밤을 계기로 앞으로 맞이할 가을은 외롭고 쓸쓸한 계절이 아니길 소망한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을 노래하는 내 인생의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언제 낙엽이 되어 떠날지 알 수 없지만 땅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낙엽이 아닌, 후손들에게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씩씩하고 현명하게 살다 곱게 물든 단풍처럼 어느 날 갑자기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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