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령산 기운이 우르르… 봄 가을 '운해'도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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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산 기운이 우르르… 봄 가을 '운해'도 절경
  • 유정아기자
  • 승인 2017.07.0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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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옥천 삼청리 용암사
신라 진흥왕 13년에 창건, 1000여 년을 이어와
보기 드문 ‘동·서 삼층석탑’ 보물 1338호로 지정
용암사 전경.

용암사 ②

한국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다. 종교는 모든 사회, 모든 민족에서 보이는 문화 현상으로 그 역사가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다. 신라시대인 552년(진흥왕 13)에 창건돼 오늘까지 이어져온 옥천 ‘용암사’도 오랜 역사만큼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본란은 종교 개혁 500주년인 올해를 제2의 종교개혁 원년으로 삼고자 지역에 산재(散在)해 있는 교회, 사찰, 성당 등을 탐방하여 각 종교가 추구하는 목표와 의미, 설립연혁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기도 한다고 죄가 없어지나? 진정한 참회 필요"

△용암사의 전설과 오늘

옥천읍 삼청리에 위치한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천축(天竺:인도)에 갔다가 귀국한 승려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이다.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충북 보은의 속리산에 법주사(法住寺)를 세웠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바로 의신이다. ‘용암사’라는 절 이름은 경내의 용처럼 생긴 바위에서 유래됐다고 하나 용바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바로 이 용바위에서 서라벌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했다는 전설도 있다.

창건 이후의 중수·중건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고려시대 양식의 석탑과 마애불상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에도 불법의 전통이 이어졌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후 지리서적엔 기록이 없어 조선 중기 용암사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임진왜란 때 병화로 폐허화되었다는 설로 미루어 보아 한동안 복구되지 못한 채 지낸 것으로 예측된다.

오늘날 용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속한 법주사의 말사이며 전체 신자는 1000여 명이다. 한 달에 2번 신자들과 함께 법회를 본다.

동·서 삼층석탑.

△‘보물’이 있는 용암사

용암사의 건물로는 대웅전·산신각·용왕각·요사채·범종각이 있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 봉안되어 있고 5종의 탱화가 있다.

용암사의 ‘동·서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대한민국 제1338호 보물이다. 이 탑은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건물의 모양새)가 몹시 간결하다. 위치 또한 일반적인 배치와 다르다.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는 것이다. 이를 보아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비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 석탑 중 유일하게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용암사 주지 도겸스님

용암사의 주지는 도겸 스님(승랍 40)이다. 스님은 15년 전 용암사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으며 그 뒤 법주사에 있다가 5년 전 다시 이곳으로 왔다.

스님은 “많은 절을 다니지만 용암사에는 다른 절이 따라올 수 없는 두 가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 째가 ‘운해’. 스님은 “용암사는 운해가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났다. 봄·가을이 특히 좋은데, 이 때문에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기운’이다. 스님은 “장령산 산세의 기운이 모두 용암사에 몰려있다”며 ”기도를 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또 다른 속매력”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의 기본 ‘효(孝)’

스님은 용암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신자로 치매에 걸린 시부모를 모시는 신자를 꼽았다. 한명도 아닌 2명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데 시부모를 간호하며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스님은 “부처님도 모든 것의 기본은 효”라고 말했다며 ‘효’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은 엄청난 용기기 필요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단지 자꾸 하다보면 자연히 습관처럼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 스님은 이러한 습관이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운명을 바꾸고자 신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스님은 “사람이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먼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을 한다. 그때 나타난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올바르면 습관으로 쌓여 그 사람의 인성이 된다”며 “인성이 좋아지면 운명이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력해서 안 되는 운명은 없다. 자신은 뭘 해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미리부터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종각.

△종교의 ‘본질’

스님은 종교의 본질은 규율과 억압이 아니라 ‘편안함’이라고 말했다. 가야하는 곳이 아닌 ‘가고싶은 곳’이 돼야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처럼 종교도 믿음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종교가 아니라도 등산이든 여행이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종교의 역할과 다름없다”며 “종교는 누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말이나 마음으로 위로를 해주는 것은 쉽지만 어떤 것도 그 사람의 상황을 대신할 수 는 없다”며 “배고픈 사람 앞에서 음식을 대신 먹는 것이 아니라 먹게끔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종교도 직접 느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 자신은 편안하시냐는 물음에 “스님의 길에도 물론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긍정의 힘을 기르면 어려운 길 위에도 서슴없이 서게 된다”고 말했다.

대웅전.

△“기도는 면죄부가 아니다”

스님은 많은 종교인들이 ‘기도’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무엇을 소망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본인의 죄가 기도를 통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도는 잘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것을 돌아보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반성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참회’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도의 형식도 ‘해주세요’ 보다는 ‘하겠습니다’가 맞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기도에는 반성의 기회와 발전의 기회가 동시에 있다”며 “종교를 통해 이러한 자아성찰을 계속한다면 분명 기도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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