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남편,
그를 기다리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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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남편,
그를 기다리던 여인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5.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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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문학평론가

1971년 3월 21일 서울시 은평구 역촌동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간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정지용과 12살에 결혼하였던 송재숙이다.

6·25 한국전쟁은 단란하였던 정지용의 가정을 풍비박산 내고 말았다.

정지용은 서울시 은평구 녹번리(현재 그 집터에는 정지용이 살았었다는 표지가 붙어있다.)  초당에서 서예를 즐기며 비교적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몇 명의 젊은이들이 찾아온 날이 있었다. 그날 정지용은 “잠시 다녀오겠다.”는 말(정지용의 장남 구관은 7월 그믐께로 기억)을 가족에게 남기고 녹번리를 나섰다.

그러나 정지용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둘째 구익과 셋째 구인(후에 구인은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도 이때 어디로 갔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처참한 전쟁은 지속되었다. 이는 미소강대국의 분쟁으로 확대되어 민족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그러한 전쟁이었다. 즉 우리민족은 불행하게도 혹은 재수 없게도 세계의 커다란 이념에 휘말려 희생만 당하였다.

생사조차도 모르는 정지용을 기다리던 그의 가족은 피난길에 오른다. 충남 논산에 살던 이복 누이동생 계용의 집이었다. 이들은 논산에 피난했다가 휴전이 되자 고향 옥천에서 가까운 청주에 임시로 정착하게 된다.

정지용의 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생사를 알길 없는 두 아들을 기다렸다. 얼마나 슬펐겠는가.

어쩌다 들려오는 남편의 소식은 자진월북이라는 불도장을 찍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이런 소문은 여러 곳으로 회자되며 사실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당시 가족들은 생업에 몰려 이러한 문단의 상황을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지용이 “가족을 솔거하여 월북한 것으로 오도되어 모두 그렇게 쓰고”(김학동, 『정지용 연구』, 민음사, 1997, 218면.)들 있었다. 만약 송재숙이 이러한 불편한 소문들을 들었다면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러나 송재숙은 장남과 함께 사회의 헛소문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생업에만 몰두하였다. 잃어버린 두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 그녀는 그렇게 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삶을 공개하는 위치에 서 있다. 또한 독자에게 다른 삶을 바라보게 하는 방향을 결정하게도 하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정지용(1902~? . 충북 옥천 생)은 50여년도 채 안 되는 세월을 살고 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생사에 대한 정확 또는 명확한 근거가 없어서 필자는 이렇게 적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미 많이 공개되었다. 아니, 거의 공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은 후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그의 작품을 읽은 후 삶의 위치를 바꾼 독자도 있다. 삶의 방향 설정이 급회전하거나 우회전한 독자의 경우도 종종 있다. 필자의 주변에서도 왕왕 그러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 사람의, 단 하나의 작품이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것이 지니는 담론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전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정지용이 ‘현대 시단의 경이적 존재’(양주동, 「1933년도 시단년평」, 『신동아』, 1933. 12, 31면.)인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최초의 모더니스트’(김기림,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 『인문평론』, 1939. 10, 84면.),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긋는 역할’(박용철, 「병자시단일년성과」, 『박용철전집1』, 시문학사, 1940, 99면.), ‘조선 시 사상 선구자’(김기림, 『시론』. 백양당, 1947, 83면.), ‘현대시의 전환자’(조지훈, 「한국현대시사의 반성」, 『사상계』, 1962. 5, 320면.), ‘천재 시인’(김학동, 『정지용 연구』, 민음사, 1987, 4면.) 등의 무수한 미적 수식어들을 동반하고 다닌다. 

이렇게 훌륭한 정지용이 필자가 살고  있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것이 무척 기쁘다.

송재숙! 정지용의 부인. 그 여인의 한 맺힌 이야기를 이렇게 몇 줄에 줄이는 것에 대하여 죄송한 마음이다. 그 여인의 자식 잃은 슬픔이 오직 힘들었으랴. 하물며 한 시대를 짊어졌던 문학인 남편에게 이데올로기라는 족쇄를 채워 가둬버렸으니…….

그야말로 그 여인은 헛짚으며 헛디디며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갔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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