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앵글에 담고 싶었다”…어느 야생화 사진작가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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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앵글에 담고 싶었다”…어느 야생화 사진작가의 사연
  • 도복희기자
  • 승인 2020.05.28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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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현 사진작가
황재현 사진작가

 

황재현(66) 씨의 일상은 야생화 사진 촬영이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야생화가 피는 시기와 장소를 목록으로 작성하고 현장을 답사해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은 그에게 큰 가치다. 식당도 카페에 가는 것도 평범한 일상이 그에겐 낯설다. 모든 신경을 꽃소식에 집중하며 산다. 야생화를 사진에 담는 것 외엔 그 어느 것도 관심에 두지 않는다는 그를 두고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야생화의 대가’라고 불렀다. 야생화가 피는 시기에 따라 전국을 찾아다니는 한 사진작가의 집요함이 남긴 꽃의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황재현 사진작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마암리가 고향이다. 삼양초등학교 21회, 옥천중학교 18회, 옥천실업고등학교(현 충북도립대학교) 21회 졸업생으로 그의 대부분의 인생은 옥천을 중심에 두고 있다. 1970년 즈음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카메라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집 안 친척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빌려 쓰게 된 것. 당시는 필름카메라로 사진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제대한 후 처음으로 카메라를 구입했다. 캐논 제품으로 ‘QL 17’이었다. KT&G에 입사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진 취미생활은 계속되었다. 사진을 위해 하루 일하고 하루는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닐 정도였다. 자동차를 7년 탔는데 35만km를 탔으니 1년에 5만km씩 탄 것이다. 그는 호남지역에서만 있는 야생화를 찍기 위해 4년 동안 호남지역 구석구석을 뒤진 적이 있다. 설앵초는 한라산과 설악산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인데 이것을 찍기 위해 정상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서 30분 이상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반 사진을 찍다가 2005년부터 야생화 촬영을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카메라 앵글에 담기는 꽃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단지 귀한 꽃을 보고 싶었고 사진에 담아 간직하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모든 취미가 깊이 빠지면 생활의 중심이 되듯이 그에게는 야생화 사진이 그랬다.
 
△함께 걷다

그의 아내(이미혜 62)도 함께 다니기 시작한 건 2005년 야생화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부부가 같이 다니니 사진 찍는데 비용 쓰는 것에 대해 허용하는 편이란다. 아내와는 백두산만 따로 가고 나머지는 전부 같이 다녔다. 울릉도 답사 등 전국 일주 99%를 같이한 것이다. 부부는 출사지 촬영을 하고나면 주변을 둘러본다. 못 담은 꽃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4천 종류가 넘는 꽃을 보고 사진으로 남겼다. 해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야생화를 보기 위해 전국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2009년 한해에 본 품종만 950여 종류다. 제주도에 자생하는 꽃을 촬영하기 위해 현지에서 한달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1박 2일 혹은 2박 3일로 다니는 것은 흔한 일이다. 부부는 각자의 사진기와 컴퓨터, 간단한 살림살이만 가지고 가서 촬영할 때만 같이 움직이고 집에 들어오면 각자의 작업을 한다. 그는 사진촬영을 한 후 엑셀 파일로 데이터 작업을 한다. 촬영 보다 이러한 작업이 더 오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정리한 사진은 CD로 뽑아서 전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보낸다. 그는 단체에 소속하지 않고 활동해 왔다. 단체에 소속되면 자율적이지 못해 오랫동안 어떤 단체에도 소속하지 않고 활동해 온 것. 지금은 전국 모임인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적을 두고 함께 출사를 가기도 한다.
 
△충북 옥천에만 자생하는 꽃

옥천에 전국적으로 소문난 꽃이 있다. 석탄리, 장계리에 뻐꾹나리(흰꽃)와 병아리풀 구절사의 분홍장구체, 노랑물봉선과 흡사한 미색물봉선은 옥천에 자생하는 귀한 꽃이다.
매일 꽃 사진을 찍는 그는 멀리 가지 않으면 살고 있는 옥천 주변에 꽃사진을 찍는다.
 
△40년 같이해온 사진

“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 카메라를 접한 이후 40여 년 동안 사진을 가까이 두고 살았다. 무조건 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야생화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야생화는 엎드려야 하고 배를 땅바닥에 대고 찍는다. 장소 이동도 많아 어렵지만 단지 꽃이 좋아 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일정을 짜서 움직인다. 날짜별로 엑셀 파일 정리를 한다. 매일 사진을 찍어서 정리하는데 정리 작업이 더 길고 어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어렵다는 작업을 단지 꽃이 좋고 그것을 담고 싶은 마음에서 40년을 한결같이 해오고 있다.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그 어떤 이유도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경쟁(?)

“야생화를 찍는 이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몇 종류나 보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은 치열하다”며 “사흘 전에 찍은 꽃을 재촬영하기 위해 가보면 순을 끊어낸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

“사진은 대다수가 기록이고 예술성이 가미되면 작품”이라며 “어느 분야가 되었든 모델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사각 프레임 안에 아름다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관건인데 야생화로 선택한 것이다. 야생화는 다 좋았다. 각자의 꽃마다 개성이 있다. 특히 오전 빛에서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 오전에 사진 촬영을 하면 맑고 밝은 청명한 사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빛의 유무에 따라 빛이 없으면 아무리 잘 찍어도 예술적이지 않다, 그냥 기록, 증명사진 밖에 안 된다. 사진은 빛을 이용하는 것,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빛이 있을 때는 더욱 선명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사진 강의를 준비한 적도 있지만 자격증을 따져 그만 두었다.
 
△재밌는 일

사진에 빠져 있다 보면 일상에서 멀어진다는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 힘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야생화를 촬영하러 다니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제일 재밌는 일이기 때문에 후회는 남지 않을 거란다. 인터뷰 내내 핸드폰 안에 저장된 야생화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그는 일상에서 먼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동떨어져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빠진 그가 남긴 사진을 감상하는 것으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대리만족 할 수밖에 없다. 사는 방법이 각양각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곰딸기
곰딸기
길마가지나무
길마가지나무
병아리풀
병아리풀
노랑꽃땅나리
노랑꽃땅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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