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건의 소송이나 범죄도 없습니다”
상태바
“단 한 건의 소송이나 범죄도 없습니다”
  • 김병학기자
  • 승인 2020.10.08 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묘사업하던 누님 집 놀러 와 눌러 앉아
‘마을건조장’ 건립 가장 기억에 남아
내친 김에 벼 도정시설까지 지을 계획
원주민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 이장 직무 수행에 탄력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는 정해수 이장
원주민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줘 이장 직무 수행에 탄력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는 정해수 이장

 

당시 버섯종묘사업을 하던 누님 집에 놀러 왔다가 마을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그만 눌러 앉게 돼 버렸네요

옥천읍 청성면 석성리에서 23년째 주민들과 동고동락을 해 오고 있는 정해수(59) 이장.

사실 정 이장의 고향은 인천광역시다. 남들이 들으면 타지 사람이 어떻게 이장을 맡을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더욱이 대대로 전 씨 집성촌에서 이장을 맡는다는 건 더더욱 아이러니컬하다. 실제로 30년 전만 해도 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감히 이장을 맡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을 뿐더러 설령 자진해서 이장을 맡겠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지지를 하거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석성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 들었다. 차츰 인구가 줄고 전 씨들이 하나 둘 고향을 등지면서 누군가는 이장을 맡아야 했고 그런 적임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 정 이장이 등장했다.

석성리에 보금자리를 틀기로 계획하고 이사를 온건 순전히 IMF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명예퇴직을 하고 이곳에서 버섯사업을 하던 누님 집에 놀러 온 것이 눌러 앉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할 것입니다

 

인간성과 성실함 인정받아 이장 맡아

 

그렇다고 정 이장이 석성리에 짐을 풀면서 바로 이장을 맡은건 아니었다. 10여 년을 평범한 농부로 지내면서 차츰 주민들이 정 이장에 대한 인간성과 성실함을 눈여겨 본 나머지 마을에서 추천을 해서 이장을 맡게 됐다. 그렇게 등떠밀려 시작한 이장이 벌써 12년째다.

내년 말이면 이장 임기가 끝납니다. 그땐 미련없이 이장직을 내려 놓고 홀가분하게 농삿일에 매달릴 계획입니다. 뭐든 오래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정 이장은 그러나 그것도 제 생각일 뿐 갈수록 고령화가 되어 가는 이곳 석성리에 마땅히 이장을 맡을만한 적임자가 나타날지 그게 미지숩니다라고 했다.

정 이장이 그간 이장을 맡으면서 이뤄 놓은 업적도 많다. 우선은 2016년 마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마을건조장을 지은 것이다. 당시 수확을 끝낸 벼를 말릴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주민들은 하는 수 없이 인근 마을에 있는 건조장을 빌려 벼를 말려야 했으며 그러한 불편함은 마을 주민 모두에게 풀어야 할 최대 숙원사업이었다. 이때 정 이장은 군 담당자를 찾아가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벼 건조장을 만들어야 겠으니 제발 좀 도와 달라고. 결국 정 이장의 끈질긴 설득력에 두 손 든 군은 석성리에 2억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벼건조 전문 마을건조장이 세워졌다. 이렇듯 건조장이 세워지자 자신보다 마을 주민들이 더 좋아했다. “역시 우리 정 이장이야”. 이후로는 더 이상 이웃 마을로 벼를 싣고 가지 않아도 됐다.

 

외지인들이 더 적극적인 도움

 

이렇듯 작은 것 하나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이번에는 마을건조장옆에 있는 500여 평의 부지를 사 아예 도정시설까지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마을 주민 모두가 수확하는 150톤에 달하는 벼를 도정할 수 있어 주민들에게도 골고루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여느 농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석성리에도 65가수에 이르는 빈집이 있습니다. 다행히 귀농이나 귀촌하시는 분들이 간헐적으로 전입을 와 하나 둘 빈집들이 사람사는 집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라는 정 이장은 다른 마을과 달리 저희 석성리로 들어오시는 외지인들의 경우 원주민과의 융화가 매우 잘 되고 있습니다. 아직 이 문제(융화)로 석성리를 떠난 사람은 단 한 가구도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석성리에는 12가구의 귀농·귀촌인들이 살고 있으며 오히려 원주민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 이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장 할 맛이 난다.

그래서일까, 23년째 이장을 맡고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주민 간 소송이나 범죄가 발생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 석성리에는 65가구 100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