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여성] 옥천은 엄마 품 같은 곳
상태바
[옥천의 여성] 옥천은 엄마 품 같은 곳
  • 김동진 기자
  • 승인 2022.06.30 1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괴산군사회복지사협회장 김홍순 씨
“지금도 매일 핸들을 잡으면 선산이 있는 청산으로 간다”는 김홍순 씨
“지금도 매일 핸들을 잡으면 선산이 있는 청산으로 간다”는 김홍순 씨

괴산군으로 시집 간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고향을 잊지 않고 옥천인으로 세상에 봉사하며 옥천을 빛내고 있는 사람. 봉사를 생활로 실천하며 통일부장관상과 충청북도지사상, 괴산군수상을 수상한 “열심히 오랫동안 일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홍순(63, 여) 씨. 그녀는 괴산군사회복지사협회장과 충청북도민족통일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1987년 ‘괴산군적십자협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가 고향인 그녀는 능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수녀인 고모를 따라 청산수녀원에서 어린 시절 천주교인으로 교육을 받고 시할머니때부터 4대를 봉송하는 삶을 살아왔다. 결혼 후 독학으로 공부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과 언어청각석사학위와 사회복지사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청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아이들에게 ‘신언서판’한 사람이 되자”는 신조를 실천하며 살아왔다.

나에게 옥천이란

엄마 품 속 같은 곳이다. 가끔 혼자서 청산의 살던 집도 가보곤 한다. 청산으로 옥천으로 학교 다니면서 글짓기를 했다. 그때 공부를 좀 잘해서 육영수 여사가 신발과 빨간색 메는 가방을 사주셨다. 

생각나는 분은 손경호 선생님이다. 지금도 옥천에 계시는데 초임 발령을 받아 능월초등학교에 오셨을때 제자였다. 그리고 꼭 찾고 싶은 선생님은 권근성 선생님으로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시다.  

지금도 매일 핸들을 잡으면 선산을 향해서 간다. 친정은 없지만 옥천은 자주 간다. 부모님의 생가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옥천에 돌아와도 생가로는 못 간다. 부모님 생가에서 살면 참 좋을 텐데. 

옥천사람으로서 유익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옥천사람은 그냥 믿음이 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박덕흠 의원님이 많이 도와주신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

나의 삶은 진취적이다. 매일 매일 사업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나이도 있지만 왕성하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덜 자고 열심히 하고 있다.

보청기 사업은 농아인들이 음악과 소리를 못 듣는데 과학이 발달하고 기계가 좋아져 농아인들에게 보청기를 끼워주고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그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아 짐에 보람을 느끼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잘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2009년에 강도 상해를 당하고 재산도 다 잃었다. 흔들리지 않는 꽃이 어디 있겠나. 그때 정말 이렇게 살려면 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괴산에서 한영문고를 운영하는 남편 후배가 100만 원을 주면서 “형수 살아보라”고 하더라. 다시 재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항상 감사해 하고 있다. 

옥천에 돌아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

사회복지사의 처우가 굉장히 약하다. 급여도 다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많이 낮다. 그래서 괴산군수를 찾아가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괴산군수가 협조를 해준다고 약속을 했다. 또한, 옥천의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사회복지사를 위해 일해 보고 싶다.

종교가 나에게 준 가르침은

종교는 나에게 기둥이다. 어떤 종교든 선함과 봉사, 사랑을 가르친다. 가톨릭 신자였기에 더 바른 길로 바르게 희생도 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누군가는 희생해야 가정이 화목해진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희생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