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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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122)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3.11.09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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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는 당시 간호사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내가 구상한 프로그램은 국가적으로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총장과의 MOU 체결식이 끝난 후, 각 신문과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와서 방송 출연과 함께 일간지에도 기사화되어 한국 간호사의 첫 호주병원 취업에 큰 관심을 끌었다. 전국에서 3년제 간호과를 졸업한 한국 간호사로서는 1년 수업 기간으로 호주 대학 학사학위 취득과 함께 호주 간호사 면허 취득, 그리고 병원 취업까지, 그야말로 1석 3조의 기회였다. 우리나라에서도 3년제 졸업한 간호사가 학사학위를 취득하려면 2년 간호학사 학위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국내 학위 취득에 2년이 소요되는데, 호주에서 1년 과정으로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환상적인 프로그램이었다. 2001년 시작하여 연간 80여 명의 간호사가 가족과 함께 호주로 갔다. 간호사 대부분은 호주에서 취업 후 영주권을 받는 혜택도 누렸다. 나는 이런 해외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면서 간호사들에게는 일체의 커미션을 받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금전적 부담 없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시도가 오히려 나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간호사들로부터 일체의 돈을 받지 않고 호주까지 유학길에 오를 수 있게 한 것이 되레 화근이 되어 나를 공격했다.

“보통 유학원을 통해 가면 1인당 수수료를 몇 백만 원씩 내야 하는데 송 학장이 잘 알지도 못하는 우리를 이렇게 공짜로 유학 보내주겠냐? 틀림없이 유학원에서 받는 비용을 호주대학에서 받을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2~3억을 받았을 것이다. 송 학장과 CQU 총장 부인이 친한 사이라서 이 프로그램이 체결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낸 등록금 중 최소 1 인당 300만 원씩은 송 학장한테 갈 거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뜬소문이 학생들 간에 퍼졌다는 연락이 왔다.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곧바로 시드니로 날아갔다. 

CQU 교수들 말에 따르면, 그 불만은 영어테스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등교 첫날, 영어 청취 능력에 따라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 영어테스트를 거쳐 ABC등급으로 평가하고, AB등급은 바로 클래스 강의가 가능하나 C를 받은 사람은 영어 강의 청취가 어려우니까 별도로 어학연수과정을 밟은 후에 강의를 듣던지 그것이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좋으니 선택을 하라고 알렸다고 한다. 그런데 거두절미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좋다(go back to Korea)는 말만 머리에 꽂혀 C등급 학생들이 공부하러 호주에 왔는데 한국으로 쫓아 보내려고 한다며 불만이 시작됐고, 그 학생들이 선동하여 그 영어 교수 퇴출 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CQU 교수들과 회의하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다짜고짜 호주까지 가서 데모부터 하 는 우리 학생들을 보니 한심했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부끄러웠다.

순간 내가 어쩌다 간호학 교수가 되어 머나먼 호주까지 와서 호주 교수들한테 미안하다고 머리숙여 사과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절망감이 들었다. 나는 한국 학생 강의실로 갔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는 차분하게 학생들에게 말했다.

“여기에 NMC 졸업생은 두 명 뿐이고 나머지 학생들은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우리 대학 졸업생에 한정하지 않고 전국 간호대학 졸업생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개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3년제 졸업한 간호사들의 갈등과 애로,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아프게 겪은 한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 학교 졸업생뿐 아니라 전국 어느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든 간에 내 학생, 내 후배로 생각하고 그 갈등을 조금이라도 나서서 해결해주고자 이 프로그램을 전국 간호대 졸업생들에게 오픈했습니다. 또 간호사들이 돈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지원할 기회를 잃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일체의 비용을 받지 않고 대학간에 투명하게 여기까지 진행해왔습니다. 내 선배가 CQU 총장 부인이라고요? 총장 부인은 Eve라는 순수한 호주인이고 내가 Eve를 만난 것은 딱 한 번, 이 프로그램 MOU 체결식이 끝나고 마련한 저녁 식사를 총장 부부와 함께하면서였습니다. 그 후 나는 총장 부인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등록금 받아서 커미션을 받는다고요? 호주 대학들이 그렇게 불법으로 허술하게 학생 등록금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너무 생각했었나 봅니다. 남들처럼 적당한 수수료도 받고 생색도 냈어야 했는데, 여러분을 생각해서 한 푼도 안 받고 무료로 진행한 것이 나의 큰 실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런 집단행동 은 다음에 오는 여러분의 후배에 큰 부담을 주는 행위이며 나아가서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임도 이번 기회를 통해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이 말을 하는 동안 눈물이 나는 것을 참고 있다가 호텔에 돌아와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내가 젊은 날에 겪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공부를 원하는 후배들을 위해 직접 공들여 만든 이 프로그램으로 내가 이런 아픔을 겪을 줄은 몰랐다. 나 혼자 비통에 빠져있는데 벨이 울렸다. 문밖에는 오늘 낮에 클래스에서 본 학생들이 몇 명 서 있었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 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정말 죄송하다며 뭘 모르고 행한 자신들의 행동을 용서해달라고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간호사들의 행동에 당황스러웠고, 또 한편 으로는 안도감이 들어 그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내게 조그만 초콜릿 상자를 내놓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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