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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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묘순 작가 정지용 시인의 기행
  • 김묘순 충북도립대 겸임교수
  • 승인 2023.12.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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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이 좁아서 
정지용의 「기차」는 아직도 달리는데 

 정지용은 화가 정종여와 함께 남해 여행을 떠난다. 

 1950년 5~6월에 부산, 통영, 진주일대를 여행하고 「국도신문」에 18회에 걸쳐 기행문을 연재하였다. 물론 동행한 정종여의 삽화와 함께 실렸다. 당시 「국도신문」에 실렸던 「남해오월점철」 18편은 원전의 마모가 심하였다. 그래서 나는 확인이 어려운 마모된 글씨를 ○로 표시해 「원전으로 읽는 정지용 기행산문」을 2015년에 편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볼 수 없듯이 정지용은 하루 종일 한 열차 밖에 모른다고 하였다. 그것은 시야가 될 만한 자연환경 자체가 좁았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 좁아서 시야가 열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일본 사람 하나 없는 기차를 타고 우리끼리 실컷 살아봐야 쾌활하다고 하였다. 야밋보따리 하나 없는 깨끗하고 아름답게 늙으신 할머니를 보며 감개무량하다고도 하였다. 그 할머니를 닮아 20년을 더 늙어봤으면 좋겠다던 정지용은 1950년 「남해오월점철」 18편 중 일부만 발표한 채, 한국전쟁 당시 행방이 묘연해졌다. 

 생각이 좁아서 시야가 열리지 않았다고 겸손해하며 우리 민족만 오롯이 살기를 원했던 정지용은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예술은 강력한 민족의 노래다. 

 정지용은 시와 산문으로 총총히 빛나는 하늘 아래에서 무지개보다 환한 작품을 써냈다. 그는 이 시기에 민중의 정서를 그리려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의 짧은 소망을 산문에 내비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를 떠나 일본 교토에 머물러 봤기에 더 많은 우리와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구사하였을 것이다. 

  “낮에는 햇빛이 아까워 붓을 안 들 수 없고 밤에는 전깃불이 아까워 그림을 안 그릴 수가 없다”던 어느 화가의 예술혼과 정지용의 문학을 향한 집념을 일직선 위에 놓아본다.

 그들의 뚜렷한 예술을 향한 그리움의 방향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을 사랑했던 애국심의 발로에 초점이 맞춰진다. 

 나야말로 생각이 좁아서 그들의 예술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에 몸서리가 날 때도 더러 있다.

 무작정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가다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가슴만 답답하고 무거워진다.

2.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보리」가 잘 자라는 까닭은 -

 사흘 내내 바람이 불고 비가 흡족히 내렸다.

 이 비를 맞고 화학비료 대신 퇴비, 인분, 재, 계분 등을 채소에 거름으로 주었던 정지용은 채소들이 잘 자람을 배웠다고 하였다. 부지런하고 적극적 합리적인 경작을 실천하라고 채근한다. 제 땅 가지고 일을 배우지 못한 게으른 사람의 곤란을 한탄하였다. 정약용의 근검정신을 이어받은 듯하다.

 1801년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오랜 유배 생활에서 두 아들을 훈육하기 위해 100여 통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넓은 토지를 남겨주지 못하니 가난을 구제할 수 있는 교훈을 남기고자 하였음이리다.

 첫째 부지런해라.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 때까지 미루지 말며 갠 날에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미루지 말라.

둘째 검소해라. 의복은 가리는 것으로 충분하니 사치한 의복을 탐내지 말고 음식은 알맞게 먹도록 하라. 아무리 먹음직한 음식도 뱃속에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속의 음식을 보고 누구나 더럽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데 가장 귀중한 것은 성실성이다. 성실은 곧 믿음이니 누구를 속이는 것은 성실하지 못한 것이다.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고 이웃과 친구를 속이고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고 나라가 백성을 속이는 것 모두가 죄악이다. 오직 하나 속일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음식일지라도 맛있게 여기며 집어넣으면 입은 그대로 속는다. 설령 입이 보지 않더라도 먹는 순간만 속이면 괜찮아지니 굳이 산해진미를 탐내어 낭비할 필요가 없잖은가. 부지런하고 검소하면 가난을 면할 수 있으니 꼭 명심하라고 다짐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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