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과대학별로 기부금 총액을 발 표한다는 총장의 말은 나로 하여금 남몰래 고민에 빠지게 했다. 인문대학을 비롯한 다른 단과대학들은 많은 학과가 있어서 그에 따른 교수 수가 많아 당연히 기부금 액수가 단일학과인 간호대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교수 1인당 500만 원씩 기부하는게 통례였다. 교수회의에서 나는 “간호대 교수는 숫자로 보면 타 대학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발전기금 총액 역시 우리 대학 내에서 제일 꼴찌일 게 뻔하다. 그러니 간호대학이 온 후 처음 있는 기금모금 행사에 우리 교수들이 타 대학 교수보다 조금 더 기부해주면 좋겠다. 타 대학 교수들이 500만 원씩 낸다니 간호대 교수들은 어렵지만 1천만 원씩만 내 주면 좋겠는데 교수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다행히 교수 전원이 내 의견에 이의 없이 동의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들이 나에게 그런 신뢰를 보낼수록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도 컸다. 나도 얼마를 기부할까 고민했다. 내가 지금껏 사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변변히 사회에 기부할 기회도 없이 살아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에 공감하면서도 아이들이 어릴 때 아들 교육상 명절 때마다 가족이 함께 고아원을 찾아 사과, 배 상자를 기부한 것 말고는 교수직을 갖고도 사회에 제대로 환원한 일이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이 참에 평생 몸을 담고 살아온 대학사회에 기부하는 것도 마음의 빚을 털어내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 1년 연봉 정도 기부하면 어떨까,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좀 조심스러워 학교발전기금을 얼마나 낼지 고민이라고 운을 뗐다. 남편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한 1억 정도 기부하지.” 하는 말에 놀랐고 고마웠다. 동시에 우리는 역시 부부구나, 나도 내 1년 연봉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내 마음하고 이렇게도 생각이 일치될 수가 있을까! 정말 신기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한마디 덧붙였다. “1억 정도 내는 교수는 별로 없을 것이고, 총장도 당신보다 적게 기부할 수도 있으니 총장한테 당신이 먼저 찾아가 일단 이야기를 해놓는 것이 예의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항상 상대방까지 배려하는 남편의 마음은 기부하는 상황에서도 도리를 지키라는 당부였다. 총장을 찾아가 “1억 원을 기부하겠다. 처음 성신에 온 내가 1억을 기부한다면 기존 교수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내는 불씨가 되어 발전기금 모금 행사가 좀 더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총장은 내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내 두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연이었다. 그런 후 내가 얼마를 기부한다는 말은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간호대학 교수들이 내게 얼마를 기부할 거냐고 물어도 나는 생각 중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약정금액을 써서 본부에 제출하는 마지막 날, 학과장이 교수들과 약 정서를 대봉투에 넣어 내게 가져왔다. 내 약정서도 대봉투에 넣어 본부에 제출토록 했다. 교수들은 다시 내가 얼마를 약정했느냐고 물었다. 그제야 1억을 약정했다고 말했더니 하나같이 놀라면서 “세상에 그렇게나 많이 혼자 내시다니요? 진작 그런 얘기를 해주었으면 저희가 조금씩 더 분담해서 낼 수도 있었는데요.” 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우리 교수들이 그렇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우리 교수들이 늘 그렇게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사실 내가 선생님들한테 다른 대학 교수들보다 두 배로 천만 원씩 내달라고 했을 때, 모두 동의해준 것 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도 미안했는지 모른다. 여러분이 천만 원 내는 것이 내가 내는 1억 이상의 가치와 부담이 된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미안함을 무릅쓰고 천만 원씩 내달라고 하고 또 나도 1억이라는 큰돈을 생각한 것은 이유가 있다. 다른 대학 교수하고 똑같이 500만 원씩 내면 교수 숫자가 제일 적은 우리 간호대학은 단과대학 중 무조건 꼴찌다. 성신에 오자마자 닥친 첫 행사에서 우리가 꼴찌를 하는 것은 자존심상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무리한 줄 알면서도 선생님들한테 그런 부담을 준 건데 한 사람도 반대 없이 받아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음날 단과대학별 모금액은 그 날짜 기준으로 단과대학 중 2등이었다. 다음날 약정액이 공개되면서 내가 기부한 1억 원이 화제가 되었다. 학장 모임이 있었는데 어느 학장이 내게 의아한 듯 “1억이나 기부하신다구요?”라고 말했다. 그때 생활과학대학장은 “사실 우리 학장님 중에 은행에 1억 예금해 놓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1억이라는 돈을 막상 기부하려고 하면 그 돈이면 아들 장가도 보낼 수 있고, 오피스텔 한 채라도 살 수 있을 텐데 등등 많은 생각으로 아까워서 다 못 내지요. 1억을 막상 기부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하고 격려해주었다. 1억을 내고도 내심 조심스러웠던 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솔직한 그 학장님의 말씀이 고마웠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좋은 일에 기부하고도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라는 것이 한편 안타까웠다.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의
1억 기부
학교 본부에서는 교내뿐 아니라 교외에서의 발전기금 모금도 계획했다. 교외 발전기금 모금위원회를 조직했고 부총장을 위원장, 나를 부위원장으로 넣었다. 심적 부담이 많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성신으로 간 후로는 처음으로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과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하면서 김 회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성신에서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대학을 위해 소액도 좋으니 성의 표시만 해달라고 염치를 무릅쓰고 겨우 말을 꺼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