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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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4.04.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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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은 조선 선조 시대 문신으로 정치 개혁가이며, 문묘(文廟)에 배향된 동국 18현이다. 임진왜란 때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1,6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청주성을 회복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관군의 방해로 흩어지고 남은 의병이 칠백 명이었다. 선생은 칠백 의병으로 곡창지대인 호남을 공격하려던 왜적과 금산에서 싸우다가 한 사람도 전장을 이탈하지 않고 함께 순절하였다, 이는 동서고금의 전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일로 그 싸움터가 지금의 금산 칠백의총이다. 

조헌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충과 효와 절의에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일본의 침략을 예견한 것은 1587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으로 일본의 사신이 통호를 요구하며 조선에 입국할 때였다. 조헌은 일본과의 통호를 반대하며 조선 침략의 속셈을 상소하였으나 선조는 상소문을 불태워 버렸다. 다시 2년 후에 혼탁한 정치와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비판하는 논시폐소(論時弊疏)를 써서 옥천에서 백의를 입고 도끼를 메고 한양으로 간다. 조정에 나아가 도끼를 옆에 놓고 임금에게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이 도끼로 내 목을 치시오’라고 지부상소(指斧上疏)를 올린다. 그는 상소에서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공물의 징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서리들의 부정과 횡포가 극에 달했으며, 부역의 증가로 이를 견디지 못하여 떠도는 백성이 늘어가는 실상과 북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백성들의 살길이 막막한 참상 등을 상소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를 구제하지 않는 임금과 조정을 향해서 ‘전하, 칼로 죽이나 정사(政事)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라고 꾸짖었다. 또한,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신하들을 열거하며 탄핵하니, 상소를 받은 선조가 격노하였다.

그가 논시폐소(論時弊疏)를 올리고 종루 옆에 초라한 초가집에 유숙하며 임금의 비답을 기다릴 때였다. 밖에서 돌아온 조헌은 낡은 기둥 옆에 큰 기둥을 받쳐놓은 주인의 지혜를 보고는 “아 슬프도다. 다 쓰러져 가는 주인집도 이제 새 기둥으로 바꾸어 몇 년간은 무너지지 않을 텐데, 만약 이 나라가 기울면 장차 누가 그것을 받쳐줄 것이며, 또 무엇으로 그것을 버티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 조헌을 미워한 조정에서는 그가 유숙하는 집주인까지 잡아다가 문초하니, 한양의 친구들도 두려워하여 더는 있을 곳이 없었다. 그가 옥천 향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경도 길주로 유배의 명이 떨어졌다.

왕조시대에 왕은 하늘이었고, 법이었고, 주인이며 기둥이었다. 조헌 선생이 목숨을 건 지부상소(指斧上疏)는 함경도 귀양이 되어 돌아왔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으며, 결국은 외침을 받아 임진왜란이란 참혹한 비극의 역사를 남겼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민주주의 정체에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의 뜻으로 선출하는 민의의 대표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사람에게 나라의 운명을 위임하는 것이다. 그들에 의해 나라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는가 하면, 분란과 위기로 몰아넣고 운명을 거꾸로 돌려놓는 불행한 시대를 맞기도 한다. 과연,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이 민주주의 원칙과 논리대로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다고 믿어도 될까? 권력을 지향하는 정치인들과 이를 지지하는 국민이 한편이 되어, 상대방을 비난하고 서로를 적으로 여기는 극한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국민을 위한다는 현란한 포장으로 권력을 탐하는 정치인들만 눈에 보이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조선시대 당쟁이 불러온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그보다도 더한 혼탁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주권을 가진 주인이 나라의 기둥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둥이 과연 누구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시대는 달라도 지도자의 덕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충언하던 조헌 선생의 정의심과 기개가 더없이 절실한 시대에 위정자를 향해 꾸짖던 선생의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전하, 칼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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