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이제 쉬라지만… 나에겐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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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이제 쉬라지만… 나에겐 꿈이 있다”
  • 유정아기자
  • 승인 2017.08.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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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호 농기계’ 김중호(40)대표
로봇과 트랙터 결합한 ‘로보랙터’ 개발에 매진
투자금액만 80억… 아직 이익 못내도 후회 없어
“CEO는 오너 아닌 리더… 전 개발과정 참여”

학창시절부터 발명왕이라 불리던 ‘(주)대호 농기계’ 김중호(40)대표는 ‘오리발 써레(논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데 쓰는 연장)’로 국내 써레 시장을 평정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농기계 부품 제작에 한정하지 않고 트랙터, 그것도 로봇과 트랙터를 결합한 ‘로보랙터’ 개발에 한창이다. ‘바퀴가 4개 달린 제품을 만드는 기업 중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라는 대호 농기계에서 세계 유일의 트랙터를 만들겠다는 김 대표의 기업 스토리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대호 농기계 김중호대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는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차고지에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바 있다. 빌게이츠가 이 말을 했을 당시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잡스가 차고지에 있었다. 그는 곧 휴대폰의 혁신을 가져왔다.
옥천에도 차고지(창고)에 있는 사람이 있다. ‘대호 농기계’ 김중호(40)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 세계 최고의 트랙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떡잎부터 다른 어린 시절
어린 시절 김 대표의 꿈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다. 승용차가 대중화 되지 않아 동네에 몇 대 밖에 없던 차를 만들고 싶어 학교가 끝나면 창고에 들어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냈다. 고등학교 2학년 땐 트랙터 부착용 벼 수확기를 개발해 ‘제16회 전국발명품 경진대회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개발한 수확기의 상용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트랙터 후방에 부착기를 달면 트랙터가 작물을 먼저 지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고, 앞에 달면 운전자가 후진으로 작업해야하니 불편했다. 그러나 이 실패는 훗날 회전식 트렉터를 개발하게 된 시초가 됐다.
김대표는 “일반 승용차에서 트랙터까지 이것저것 다 만들어봤다. 부착기뿐만 아니라 지금 대호 농기계에서 판매하고 있는 써레도 그때 개발한 것”이라며 “창고는 나의 공장이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시도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오리발 써레로 사업 성공
김 대표는 스무 살 때 고향 전북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구상했던 오리발 써레와 배토기, 기타 농기계 집기 등을 제작·판매 했다. 특히 오리발 써레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업을 안정기로 올려놓은 효자 상품이 됐다. 이후 사업 확장을 위해 2004년 옥천군으로 터전을 옮겼다. 90여명의 직원들이 이곳에 근무하고 있으며 2~5월 성수기엔 100여명이 일한다.
김 대표는 “여러 농기계 부품들을 판매하면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다. 남들은 지금까지 번 돈으로 편히 쉬라고도 했지만 획기적인 트랙터를 개발하겠다는 꿈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에도 수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속품으로는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며 “중국이나 일부 개발도상국에선 싼 가격의 ‘짝퉁’제품까지 나오고 있어 농기계도 기술 집약 산업으로 도약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대구 박람회에 전시된 로보랙터

▲로봇+트랙터의 결합 ‘로보랙터’
김 대표는 로보랙터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오너로서가 아니라 리더로서 트랙터 개발에 나선 것이다. 명절과 휴일도 없이 개발에 매진, 2010년 7월 첫 시제품을 냈다. 하지만로보랙터는 200m를 채 못가고 멈추고 말았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농기계 부품을 팔아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 어릴 적 꿈이었던 트랙터를 개발하기로 결심했다. 나만이 로보랙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출발했지만 첫 시제품은 성능도 떨어지고 문제가 많았다. 당시 테스트를 위해 관내 논이란 논은 닥치는 대로 갈아줬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도 첫 비행에선 얼마 가지 못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각오를 하면서 실험을 거듭한 결과 오늘날의 비행기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다행히 트랙터는 떨어져 죽을 걱정 없이 많은 시도를 해봤다”고 웃었다.
대호농기계는 2014년부터 로보랙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해서 연간20~40여대 밖에 만들지 못했다. 아직도 판매 보다는 취약점을 보완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A/S를 제공하기 위해 리콜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을 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도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다. 지금도 계속 로보랙터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원가구조도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구성 테스트 강돌밭 로타리 작업

▲기술 개발보다 힘든 사람들의 ‘편견’
김 대표는 “써레 만드는 작은 회사가 트랙터를 개발한다니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자선거를 만들던 기아가 국내 최초의 자동차를 생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 기아자동차는 삼천리 자전거부터 시작해 국내 첫 자동차를 개발하고 현대 자동차와 합병하며 규모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소비자들에겐 더 잘 알려진 제품이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작은 기업이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선뜻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씁쓸해 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트랙터 부품 생산 업체와의 계약이나 기술 개발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단가를 높여줘도 작은 기업과의 거래 자체를 꺼린다. 단가가 낮아도 대기업하고만 거래를 원하니 답답했다. 연구원에게 높은 연봉과 복지를 제공해도 대기업 비정규직을 더 선호한다. 지방의 중소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로보랙터를 정비중인 모습

▲옥천드림의 꿈
(주)대호농기계는 네 바퀴 달린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중 가장 작은 회사다. 그들과의 경쟁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게다가 로보랙터 판매는 이익을 내는 상황도 아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트랙터 개발에 80억 원을 투자했다. 아직 이익도 제대로 못 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투자를 후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이일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의 운영자는 오너가 아닌 ‘이순신’장군과 같은 리더여야 회사의 발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말하듯 대호 농기계의 사장실은 ‘우리들의 리더’라고 표기돼 있다.
김 대표는 “대호 농기계는 대기업도 아니고, 수도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편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3D업종이다. 자기는 어려운 일을 피하면서 직원들에게 따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도망가는 선장을 누가 따르겠냐”며 “리더부터 직접 발로 뛰어야 직원들도 믿고 따른다. 대업을 이루려면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한마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 대표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트랙터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 유일의 제품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지치다가도 힘이 난다”며 “옥천지역을 ‘로보드림’으로 만들고 싶다. 가령 독일 폭스바겐 부르크 같은 경우다. 그 지명도 폭스바겐 회사가 그곳에 있어 생긴 이름이다. 이곳에서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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