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연보로 본 작품발표 현황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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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연보로 본 작품발표 현황Ⅱ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7.11.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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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지용, 연보로 본 작품발표 현황Ⅰ」의 작품 연보에서 보았듯이 정지용은 운문(시와 시조)은 168편, 산문(소설, 수필, 평)은 122편을 발표하였다.
이 부분은 학자마다 갈래적 논의가 다를 수 있고, 이후 발굴된 자료도 있을 수 있어 편수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음을 밝혀둔다.
정지용은 동지사 대학 유학 시절과 그 직후인 1930년까지 87편의 시와 9편의 시조를 발표한다.
정지용의 시 절반 이상을 이때 발표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리고 1935년까지 운문(시는 123편, 시조는 9편)은 132편이다.
대부분 시를 이때 발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산문은 1935년까지 소설 1편, 수필 10편이 고작이다.
그런데 1936년부터 산문 발표를 부쩍 많이 한다. 이때부터 발표한 산문이 무려 111편이나 된다.
표에 나타난 총 122편의 산문 중 ‘거의 산문이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정지용은 1935년 이후 급격히 많은 산문을 발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지용의 시와 산문의 발표연도를 기준으로 산문과 시의 발표 집중도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A)는 잡지나 신문 등에 발표한 그래프이고, (B)는 단행본에 발표한 그래프이다.
단행본은 주로 잡지 등에 이미 발표했던 것들을 출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단행본 도표(B)를 따로 비교하도록 하였다.
실제 같은 작품이라도 단행본 발표연도보다 잡지 발표연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 그래프의 내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 「정지용 산문 연구」에서 인용했음을 밝힌다.
정지용의 「조선 시의 반성」에서 당시 국내외 상황이 무척 좋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1941년 이때는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반포, 『문장』, 『인문 평론』 폐간, 독일군 소련 기습 대서양 헌장 발표, 대한민국 건국 강령 발표,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격, 미국, 대일 선전포고(태평양전쟁 시작) 등이 시인 정지용을 괴롭혔다.
시집 『백록담』이 나온 시기를 정지용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척 피로”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시를 써 내놓지 못하고 시를 논의하는 것이 퍽 부끄러운 노릇이다.
전에 평론 공부를 한 이력이 있었더라면 이제 와서 이一文을 草하기가 수월하였을 걸―시인 소리만 들어온 것이 늦게 여간 괴롭지 않고 시 쓴 버릇 때문에 정서와 감정에 치료하기 어려운 편집적 병벽이 깊어져서 나는 몹쓸 사람이 되어 버리지나 않았나? 하는 괴로움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중략) 여러 가지로 남이나 내가 내 자신의 피폐한 원인을 지적할 수 있었겠으나 결국은 환경과 생활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중략) 생활과 환경도 어느 정도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겠는데 친일도 배일도 못 한 나는 山水에 숨지 못하고 들에서 호미도 잡지 못하였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 시를 이어 온 것인데 이 이상은 소위 『국민문학』에 협력하던지 그렇지 않고서는 조선 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신변의 협위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
-『조선시의 반성』 중

이런 상황에서 친일시를 쓴다는 게 후세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될지는 정지용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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