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기업 사원에서 ··· 농사꾼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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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대기업 사원에서 ··· 농사꾼으로 ‘탈바꿈’
  • 유정아기자
  • 승인 2016.03.1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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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싱싱농원 강상규(60)氏

 

 

 

 

 

 

 

 

 

49,587㎡ 묘목농장운영… 수억원 매출 ‘성과’
취급품종 기존 5가지에서 60가지로… 12배 규모 확장

■선택의 연속이었던 귀촌
“안하던 농사일로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손이 다 터지는 날도 다반사였죠” 흙 묻은 장화와 거친 손, 누가 봐도 농사꾼인 강상규(60)씨는 2008년 옥천군 이원면으로 귀촌했다. 강씨는 이원면 윤정리에서 49,587㎡ 규모의 ‘싱싱농원’이라는 묘목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티비브라운관 생산업체 인사과 직원이었던 강씨는 묘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로 귀촌을 감행했지만 지금은 다른 농원 못지않게 성장했다. 귀촌하기 전 강씨는 본인의 노년을 대비하기 위한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 후 강씨는 국내의 수많은 직업 중 자본을 투자해야하는 직업 50개와 무자본으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직업 50개를 추렸다. 총 100개의 직업 중 수익성과 비전을 생각하며 고른 직업이 바로 묘목농장운영 이었다.

강씨는 “노후대비는 노후에 닥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준비하고 있어야 노년이 됐을 때 원하던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묘목농장을 선택한 것도 그간의 시행착오 기간을 염두하며 먼저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묘목농장운영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후 본인의 거주지 또한 직업에 맞춰 선정했다.

강씨는 전국 묘목의 70%를 생산하는 묘목특구지역 이원면을 선택했다. 이왕 묘목농사를 시작하려면 묘목에 관한 사회적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조근화씨가 판매예정인 묘목을 손질하고 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강씨는 처음 귀촌했을 당시 묘목을 배우고자 군청에 문의해 농업기술센터의 자문을 추천받았다.

이후 씨앗 고르기, 파종하기, 거름을 주는 시기 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배워갔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고 예상보다 묘목농장의 벽은 높았다. 실패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사일에 익숙하게 될 때까지 끊임없는 자문을 구했다.

그렇게 3년, 베테랑 농사꾼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치열하게 농사일을 했다. 강씨는 “안하던 농사일을 하니까 몸이 고되고 후회할 때도 있었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물론 있었다.

강상규씨가 묘목을 심을 땅을 일구고 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일이었고 원망이나 후회는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에포기할 수 없었다”라며 본인의 의지하나로 견뎌왔던 3년의 시간을 회상했다.

강씨는 “지금도 묘목농장에 평생을 바쳐 일하는 선배 농사꾼들을 따라가기엔 부족하다”라며“초반엔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남들 5시에 일어나면 3시에 일어나서 부지런히 일을 배웠다. 그렇게 노력하니 4년차가 되서야 묘목농장을 운영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처음 묘목농원을 시작할 때는 3,000평으로 시작해 기본품종인 5가지 품종을 취급했다. 매실나무, 감나무, 살구, 복숭아, 대추나무까지 유실수 위주로 시작했지만 현재 싱싱농원은 1만5,000평 규모의 농장으로 이전에 비해 5배나 규모를 확장시켰다. 규모 뿐아니라 취급하는 품종도 5가지에서 60여가지로 12배가 넘는 품종을 확장했다.

나무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초작업까지 수작업으로 한다. 어린 묘목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약을 쓰지 않고 제초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며 연 매출 2,000만원으로 시작한 농원이 작년기준 약 7,000만원 정도로 수익을 늘렸다.

강씨는 “아직은 농장규모와 취급품종을 계속 늘려왔기 때문에 끊임없는 재투자를 하느라 순수익은 적은편이지만 앞으로 계속 유지한다면 점차 수익이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주민들과의 관계
귀촌은 직업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거주지에 적응해야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모든 것이 변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내적·외적으로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강씨는 “주민들과의 관계에서도 처음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웃는 모습으로 계속 다가가니 역시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며 “처음 보는 외지사람에게 먼저 친절히 다가와줄 것이라는 생각자체가 욕심이다. 마을사람들과 익숙해지려면 자주보고 부딪쳐봐야 정도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주민들 뿐 아니라 공공단체의 기관장이나 이장, 새마을 지도자 등 지역 정세에 밝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역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위해 마을 원두막에 비가림막을 설치하며 편의를 도왔고 어버이날과 같은 마을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여했다. 먼저 다가가 인사도 하고 안부도 물으며 다가가니 그 지역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강씨는 “어차피 이곳에 와서 평생 봐야할 사람들인데 내가 먼저 웃으며 다가가고자 노력했다”라며 “그런 노력으로 지역주민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가족의 설득
처음 귀촌을 결정했을 당시 아내 조근화(57)씨는 귀촌을 반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다니고 있는 회사에 나와 성급하게 귀촌을 결정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아내를 채근하지 않고 먼저 귀촌을 시작해 주말부부생활을 하며 기다렸다. 그렇게 1년 동안 주말 부부생활을 마쳤을 때 아내 조씨는 강씨의 확고한 의사를 보고 귀촌행을 결심했다. 아내 조씨 역시 농사일에 초보였던 터라 힘에 부치는 경우도 많았다.

강씨는 “본인만 믿고 따라 와준 아내가 늘 고맙다. 아내 역시 농사일에 초보였지만 힘을 합쳐 같이 묘목농원을 운영하게 됐다”라며 아내에게 그간의 속마음을 비쳤다. 강씨 가족은 아내 외에 슬하에 두고 있는 자녀 강다영(29)씨, 강종서(19)씨 또한 이곳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가족 모두 처음 농촌생활이지만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 준비했던 그 마음 그대로
강씨는 본인의 경험을 말하며 귀촌을 적극 추천했다.그러나 모든 일엔 양면이 있는 것처럼 귀촌 또한 장단점이 있어 신중을 기해야한다.

귀촌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결국 포기할 가능성이 높고, 귀촌에 투자했던 초기자본에 대한 자본손실과 노력, 시간 등 개인이 감당해야하는 출혈이 너무 크다.

강씨는 “도시생활에서 꿈꿔왔던 귀촌의 낭만은 절대 귀촌 초기부터 느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강씨가 추천한 귀촌 준비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우선 귀촌을 하면서 원하는 직업에 대해 향후 비전과 수익성을 고려해 선택해야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대사회에선 새로 생긴 직업도 있지만 경쟁력을 잃고 사양화되는 분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전망과 첨단산업, 희소성 등을 고려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인지도 생각한다면 보다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이후 그 직업에 맞는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을 선정해 성공확률을 높인다.

강씨가 묘목농원을 선택한 후 묘목특구 지역인 이원면을 선택한 것과 같이 선택업종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는 곳으로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직업과 지역의 선택으로는 부족하다. ‘진인사대천명’,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피나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

강씨는 “귀촌을 준비할 때 조언과 지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초심은 본인에게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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