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 인생 전통악기 제작자 ‘신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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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인생 전통악기 제작자 ‘신양호’
  • 도복희기자
  • 승인 2018.11.29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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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전시관서 악기 전시하는 게 소원
힘든 작업 전수자 없어 전통 끊어질라

팔공국악기 신양호(60) 대표는 20대에 전통악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형 판호 씨가 먼저 이 길을 가고 있었기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이 40년 동안 외길을 걷게 했다.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아름다운 우리가락을 찾는데 그의 인생을 바친 것. 나무에서 소리를 찾아내는 그의 작업은 많은 이들이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이었다. 알아주지도 크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님에도 그는 나무에서 가락을 찾아내는 이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자부심 뒤에 홀로 묵묵히 걸어가는 이에 대한 쓸쓸함과 외로움도 보였다. 그의 젊음을 바쳐 손끝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타악기들이 어느 자리에서 신명으로 또 어느 자리에선 감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적실 것이다. 우리의 전통 악기를 만들어 온 신양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편집자 주>

△ 소리를 찾아내는 장인
전통 타악기(장구, 북 등)는 용도에 따라 사물놀이용과 민요용으로 나뉘어 모양과 문양이 다르게 제조된다. 대부분 오동나무로 만들어지는데 신 대표는 소나무나 느티나무 등 다른 나무도 사용해 소리의 음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고 끊임없이 연구한다. 소나무나 느티나무는 오동나무보다 재질이 강해 작업하기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소리가 잘 나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용해 그쪽으로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

목재를 선택하면 용도에 맞게 재단한 후 가공 작업을 거친다. 나무의 두께나 울음태, 적당한 외경을 맞춰 좋은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외경의 차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미세한 차이를 찾기 위해 그는 하나하나 악기를 만들어나갈 때마다 몰입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어떤 가죽(소가죽, 말가죽, 양가죽 등)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용도에 따라 주문 생산 함으로써 소리와 음을 맞춰준다. 그는 40년간 경험을 통해 좋은 소리를  찾아내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 좋은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신 대표는 “일반인들은 똑같은 장구로 보지만 장구의 모양이나 나무의 두께에 따라 소리의 차이가 민감하게 난다”며 “어떻게 하면 최상의 소리를 찾아갈 것인지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하나의 악기마다 혼을 불어넣고 있는 장인의 정신이 느껴졌다.

△ 40년 노하우 전수자 없어 안타까워
“타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곳은 10군데도 안 된다. 전망이 좋지 않고 고된 작업이다 보니 젊은이들이 선뜻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게 신 대표의 말이다. 그는 “이제까지 익힌 노하우를 전수할 제자가 없이 내가 마지막이란 생각에 안타까움이 크다”며 ”배우고자 하는 전수자가 있다면 가르쳐 줄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타악기를 만드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인내를 가지고 해야 하는데 배우러 왔다가 힘들면 그냥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무를 만진다는 게 어려운 작업이라며 우리나라 전통악기의 맥을 이어나간다는 측면에서 장인에 대한 국가적 처우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무형문화재나 명인으로 인정받아 40년 간 쌓아온 그만의 비법이 전수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무형문화재 선정 심사를 대부분 대학의 교수들이 하는데 이것은 서류구비라든지 보여주기식 이어서 실제 좋은 악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 외로운 직업이지만 자부심 커
“내가 만든 악기를 가지고 간 사람에게서 소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 가장 보람 있고 힘이 난다”며 “더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틀이 아닌 새로운 악기 만들기에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로운 직업이지만 하나하나 만들어 나갈 때 보람과 자부심을 갖는다고도 했다. 또한 그는 “군 차원에서 공예전시관을 만들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영동군에서는 지역에 이 같은 타악기를 만드는 사람이 없어 외지인을 유입시켜 광고, 판매, 전시관, 작업장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고향이라고 왔는데 다른 지역보다 등한시해 때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도 생각해 본 적도 있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 명인으로 인정받길
처음부터 옥천에서 팔공 국악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결혼 후 독립적으로 이 일을 시작한 건 대전에서였다. 이후 대구에서 하다가 옥천으로 이사한 건 1999년이다. 이원면 원동리가 고향인 신 대표는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현재 그는 아내 김영미(50) 씨와 단둘이 일을 한다. 그의 아내 역시 동이면 청마리가 고향이다. 김 씨는 지난 10월부터 ‘신정옥 국악연구소 두견예술단’ 소속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동이풍물단에서 15년 간 장구, 북, 꽹과리, 민요, 난타 공연을 해왔다.

남편이 만든 악기를 가지고 공연할 때 악기 소리가 맘에 들고, 정이 간다고 말했다. 9시 작업장에 내려오면 뱃노래부터 시작해 장구, 난타, 경기민요 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는 “옆에서 일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일하는 거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며 “앞으로 명인으로 인정받길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고 존경스럽다”고 남편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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