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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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향수신문’ 시리즈 ‘성취가 성공보다 행복했다’(73)
  • 송지호 성신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10.2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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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도 저 사주쟁이 정말 웃 기는 사람 아니냐며 저런 엉터리 같은 여자가 용하다고 소문이 난 것 자체가 너희 은행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 후 3월 24일, 토요일 근무를 마치기 직전에 한국일보 기자 K 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토요일이니 점심에 별일 없으면 식사나 같이 하시지요. 제가 출입 하고 있는 국방부에 내가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대학 선배님이 있어 두 분을 서로에게 꼭 소개해드리고 싶어 같이 나가겠습니다.”

나는 펄쩍 뛰며 나는 결혼은 관심 밖이라며 싫다고 답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중학교 시절 나와 함께 테니스 선수 생활을 하고 고등학교는 이화여고에서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친구 귀선이, 테니스를 좋아하시는 삼성물산 사장님과 김포 내리에서 테니스를 하기로 선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K 기자는 내가 NMC 졸업하던 해 전무후무했던 간호사 파업 때 언론 인터뷰를 도맡아 한 덕분에 알게 된 한국일보 기자의 동료 기자였는데 가끔 내게 호의로 전화를 해 와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던 기자였다. 선약도 선약이었지만 결혼할 마음이 아직은 없었다. 그래서 재차 거절했다. 그러나 K 기자는 그날따라 막무가내로 내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돌스하우스(Doll’s House) 라는 조선호텔 카페로 와서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친구 귀선이와 K 사장님과의 약속은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소개할 남자를 동행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국제사무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친구 Y.Lee를 동행했다. 부담을 덜고 싶어서였다. 돌스하우스에 들어가니 K 기자가 벌써 와 있었다. 옆자리에는 내게 소개해준다는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K 기자는 간단하게 소개했다. 서울상대를 나와 현재는 신문기자로 같이 국방부를 출입하고 있는 분으로 L 기자라고 했고 내 소개도 상대방에게 간단히 했다. 첫인상은 깔끔하고 단정한 훈남으로 인물을 좀 보는 내 기준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일부러 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척하기 위해 앉자마자 그와는 인사만 나눈 후 고의적으로 K 기자하고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 아마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나에게 관심이 없어질 거라는 나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카페에서 점심을 한 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말없이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던 기자가 갑자기 “사실은 오늘이 제 서른두 번째 생일입니다. 제 생일날 이렇 게 소개를 받고 보니 K 기자가 제게 가장 큰 선물을 선사한 것 같습니다. 오늘 생일 기념으로 우이동 그린파크에서 저녁을 근사하게 내겠습니다.” 하면서 택시를 불러세웠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쳐다보는 내게 K 기자는 ‘가서 저녁이나 함께 하자’며 끌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Y.Lee를 꼭 붙잡았다. 그렇게 네 명이 그린파크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가면서 L 기자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첫인상처럼 성격이 보기 드물게 솔직하고 순진해 보였다. 대한항공에서 여자에게 매너 좋고 듣기 좋은 말이라면 일등으로 잘하는 매너맨들과는 달리 진솔하고 꾸밈없이 솔직한 아니, 깔끔한 외모와는 다르게 촌스러울 만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인간적인 신뢰를 느꼈다. 저녁 먹고 나오면서 택시를 잡아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L 기자의 호의에 택시를 탔다. 그가 물었다.

“내일 일요일인데 뭐 하세요? 별일 없으면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 하고 있는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연주회 가지 않을래요?”

그러잖아도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고 입장권이 자그마치 2만 원이나 해서 돈 주고 가기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못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정확하게 내가 예스할 만한 미끼를 던졌다. “그러잖아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되었다. 다음날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둘은 이대 정문 맞은편 한 식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굴비정식을 시켰고 L 기자는 불고기 백반을 시켰다. 불고기 백반이 먼저 나왔다. 음식이 나오자 그는 수저를 들고 먼저 먹겠다면서 먹기 시작했다. 물론 9시가 넘었으니 배고플 시간이 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 음식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남자가 먼저 먹을 수가 있나 싶어 은근히 화가 나 있는 동안 내가 주문한 굴비 정식이 나왔다. 음식을 앞에 두고 나는 일부러 먹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왜 안 먹느냐고 자꾸 물었다. 나는 참고 있다가 “세상에 여자 음식이 나중에 나오면 다 먹고 난 남자 앞에서 혼자 먹고 있으라는 말 인가요?” 하며 약간 화를 낸 듯 말했다. 

“듣고 보니 미안합니다. 제가 여자를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니 이번에는 이해해 주고 다음부터는 그럴 때마다 솔직하게 가르쳐주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솔직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말하고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그의 진솔한 태도에 호감이 갔다. 저렇게 순수한 남자라면 하얀 백지에 멋진 그림을 그리듯이 우리 인생을 꾸밈없이 하얀 도화지에 하나씩 그려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나를 깨웠다. 분명 내게 푼수 없이 친절하고 매너있게 대하던 다른 남자들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소개 35일 만에 올린 나의 결혼식

다음날부터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났다. 그런데 만난 지 사흘 되던 날, 그가 말했다. 

“나는 마음을 99% 정했으니 1% 남은 것은 그쪽에 달렸어요. 1%만 오케이 하면 100%가 되어 결혼하는 거지요.”

“사흘 만나고 결혼이라니요? 내가 사기꾼이라도 되면 어쩌려구요?” 

“여자는 거기서 거기지 어떻게 다 알 수 있습니까? 설령 몰라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남자 하기에 달린 거지요. 그 모자란 부분은 남자가 채워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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