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95)
상태바
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95)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2.12.22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웅진 용당에서 올린 기의시제

임진년(壬辰年) 7월 4일, 조헌 선생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웅진(熊津 공주)으로 간다. 금강 변에 위치한 용당(龍堂)에서 하늘에 기의시제(起義時祭)를 올리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충성을 맹세하고 전투의지를 다짐한다. 비록 군복도 없고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이 강토를 침범한 왜적을 섬멸하고야 말겠다는 전투의지만큼은 어느 군대보다도 높았다. 

제사에 임하는 의병들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결연했다. 대장인 조헌 선생을 중심으로 참모와 편장들이 휘하 부대를 정돈하여 대오를 갖추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며 이 강토를 짓밟고 백성들을 살육하는 무도한 원수의 왜적을 복수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다. 
이날 제사에 올린 기의제문이다.
          
<기의시제웅진용당문(起義時祭熊津龍堂文), 임진 7월 초4일>
 
꿈틀거리는 왜적은 우리나라의 원수다. 몰래 군대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삼강(三江)에 돌입하였다. 이미 중관(重關)의 요험(要險)을 잃었으니 이를 막을 사람이 없도다. 여러 백성들은 어육(魚肉)으로 칠묘(七廟)는 잿더미가 되었도다. 전쟁이 일어난 지 석 달 만에 대가(大駕 임금의 가마)는 파천(播遷)을 하시고 한 나라의 윤리와 기강은 흩어지고 어지러워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아! 우리의 삼한(三韓) 땅은 예의가 본래 밝았고 기자(箕子)의 규범이 전한 바로 강산마저 편안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 왜적으로 하여금 제 마음대로 사람을 마구 죽이게 하였으니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 같은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되었는가? 이에 모든 의사(義士)들은 왜적을 토멸(討滅)하기를 원하고 있다. 미천한 헌(憲)으로 의병장(義兵將)을 삼으니 나 자신은 대적하기가 어려운 줄 아오나 임금께서 피신하고 계시니 신하로서 걱정이며 생민(生民)이 모두 죽게 되니 산하(山河)도 수치스럽게 여긴다. 의병(義兵)을 규합하는 이 자리에 감히 뜻을 모아서 맹세하노라.

단(盟壇)에 올라 실천할 것은 오직 나라를 위할 뿐이다. 이 용강(龍江)을 보살피는 신령(神靈)은 우리나라를 도와주시어 저 무도한 왜적들을 당장에 무찌르게 해야 할 것이다. 금수(禽獸)의 발자취로 하여금 우리의 강호를 더럽히게 하지 말 것이며 흉악한 칼날로 하여금 우리의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지 말도록 할 것이니 상제(上帝)께 밝게 고하시어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어 백성을 위하여 복수(復讐)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왜적의 조각배도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하시면 우리 임금은 신명(神明)에 공경하여 반드시 끝과 처음이 있을 것이다. 신명께서는 이 고하는 말씀을 들으시고 나의 떨어뜨리는 눈물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삼가 돼지와 단술과 쌀밥 등 온갖 것으로써 깨끗이 올리오니 흠향(歆饗)하시옵소서! 

제사를 마친 일천육백여 명 중봉 의병의 사기는 충만했고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이러한 기세라면 능히 어떠한 적과도 대결할 만했다. 그다음 날, 먼동이 트자 조헌은 아침 일찍 군사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고 오직 국난과 진격만을 생각하라는 맹세를 한다. 그리고 의병이 반드시 명심하고 지켜야 할 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군령을 하달했다. 
 
    호군서사(犒軍誓辭)
(1)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게으름을 부리지 말고, 대오를 잃지 말고, 자리를 떠나지 말라.
(2) 남을 해치지 말고, 적병을 두려워하지 말며, 오직 군령만을 생각하고, 국난만을 생각하      며, 진격만을 생각하라.
(3) 감히 물러나지 말고, 오직 큰 적을 죽이며, 작은 이익을 탐내지 말라.
(4)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하면 마침내는 공훈이 있을 것이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하지 않으면 벌이 있고 후회가 있으리라.
(5) 오직 의로움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하라.

이러한 대장의 명령은 의병들 스스로 복종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였고 적진에 임하는 정신자세를 확고히 하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