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제삿날 떠올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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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삿날 떠올린 생각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3.02.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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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일은 봄이 절정인 양력오월이다. 가장 좋은 달 오월, 이 자식은 과분하게도 한 여름도 아니고 한겨울도 아닌 가장 좋은 계절 오월에 어머니와 작별을 하고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어머니께서 가신지도 십 년이 넘었고 우리는 기일에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이 다 모인 가운데 저녁에 제례를 올린다.  

집사람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사음식 마련도 이젠 힘에 부쳐한다. 세월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오월 기일에 집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제 부모님 제사를 아버님 기일에 합쳐서 한 번만 올리자고. 가족들은 그게 얼마나 어렵게 말한 것인 줄을 알고 집사람의 힘듦을 아는지라 그러자고 했고 나도 동의했다. 

한데 추석이 돌아와 차례 음식을 준비하던 집사람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님 제사를 어머님과 함께 올릴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내가 편히 잠잘 순 없을 것 같아. 그냥 하던 대로 해야겠어요” “그래, 당신만 괜찮다면 하던 대로 해!” 집사람은 기일에 각각 올리던 제사를 함께 한 번만 올린다는 건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도 그게 그렇게 쉽게 바꿀 순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모님 기일 두 번, 설과 추석 차례까지 합쳐 일 년에 네 번 제례를 올리고 있다.

우리의 제상(祭床)은 옛날 집안 어른들이 하던 걸 그대로 따라 상 두 개를 맞대놓고 그득하게 음식을 차린다. 배와 사과도 마트서 제일 큰 걸로 고르고 대추, 밤, 곶감, 과자, 산자, 쇠고기, 돼지고기, 닭, 조기, 김, 북어포, 탕 삼종, 나물 삼종, 떡, 각종 전 등이 상에 오른다. 장만하느라고 힘이 들만도 하다. 

그러던 며느리가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자 제사를 합치자고 제의했다가 다시 거두어  들인 것이다. 우린 일단 전에 하던 대로 하기로 하고 추석 지나고 열흘 후 아버지 기일에 전에 하던 대로 제례를 올렸다. 힘은 달려도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집사람이 너무 고맙다. 그렇게 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 난 큰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가고 나면 너희들은 지금 어머니 아버지가 하던 대로 안 해도 된다. 다만 네 식구와 합의가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가끔 어머니 아버지 생각만 해주면 좋겠다.” 아들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잘하는 큰아들은 부모가 하던 대로 하고 싶겠지만 이 문제는 제 식구의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용히 듣기만 한 것이다. 난 아들의 마음고생을 덜어주기 위해서 이런 말을 일찌감치 내놓은 것이다. 

이젠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만 고집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어른들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이야기이다. 내가 젊을 때 아버지 세대에나 통하던 일로 그러한 시대는 그때로 종말을 고했다. 

난 우리 종중 일을 십여 년 넘게 보고 있지만 이젠 힘에 부침을 느끼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선다면 그나마 힘을 내서 해보겠지만 어느 누구도 종중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냥 몇 사람이 간신히 꾸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착잡한 심정으로 “우리 가고 나면 이 일을 누가 하려는지…”라는 말을 되뇐다.  

아마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산에 다니며 조상 묘 가꾸고 기일이나 명절에 제사 올리는 풍습은 옛이야기가 될 것 같다. 젊은 사람들만 탓할 수도 없다. 우리 연배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그들도 이런 일을 무척 싫어하고 있다. 어떤 땐 그들이 먼저 음력 시월에 산소에서 올리는 시사(時祀) 없애자 하고, 기일 명절 제사 없애고 조용히 있는 산소 파헤치며 이런 일에 앞장서고 있다. 

사람이 가장 하기 힘들어하는 일이 조상을 위한 일이다. 종중에서 벌초를 하거나 시사에 종중원들 나오라고 하면 많아야 대여섯 사람이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일을 하려면 내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나 하기 좋은 일만 하고 돈만 보고 살 수 있는가. 

한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마찬가지다. 나하고 몇 사람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서울파 시조 사무실에도 올라가고 시제에도 꼭 참석하며 종중 일을 보고 있지만 솔직히 힘에 겹고 손 놓고 싶다. 연락이 와도 두어 군데의 모임에는 참여를 안 하고 있다. 이러니 내가 남 탓만 하고 있을 형편도 아니다. 

우리 부부는 죽으면 화장하기를 원하고 산소조성을 안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산소 돌보는 일을 안 하거나 일거리를 줄여주고 싶은 게 지금의 생각이다. 죽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고 가끔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나 해주고 저희들 건강하게 잘 살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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