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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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3)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3.02.2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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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성패는 오로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
 
오후가 되자 조헌은 2차 공격을 명령하였다. 이번 작전은 서문을 공격하면서 아울러 성벽의 약한 부분을 넘어 성안으로 진입하는 좀 더 적극적인 전투를 계획하였다. 이미 용이한 공격지점을 정찰해 두었고 충분한 성공 가능성이 있었다. 성곽 가까이 접근한 의병들은 선두 제대를 앞세워 공격이 재개되었다. 다른 성문에서도 동시에 공격이 재개되었고 적은 조총과 활을 쏘며 저항해 왔다. 피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드디어 의병들이 성을 오르기 시작했고 조헌 의병대장의 독전하는 북소리는 더욱 높아져 갔다. 적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으나 드디어 서문의 문루(門樓)를 확보하자 조헌 의병장이 문루에 올라 전투를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이었다. 이제 막 서문을 열고 의병들이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서쪽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했다. 거센 비바람까지 불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거센 비바람과 억센 빗줄기가 몰아쳤다. 군사들은 흠뻑 젖었고 8월인데도 한기(寒氣)에 떨었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으로 낮이 밤처럼 어두워지더니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곽을 오르던 공격 부대는 더 이상은 공격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바라보던 조헌 선생이 탄식하기를 “옛사람의 말에 성공과 실패는 하늘에 달렸다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나” 하고는 징을 쳐서 군사들을 후퇴시켰다. 원수를 토벌할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물러나는 심정이 안타까워 땅을 쳤으나 하늘이 돕지 않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비는 그쳤으나 이미 적은 성문을 굳게 닫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관군과 승병의 수장과 참모들이 모여 차후 행동을 논의하였다. 전열을 가다듬어서 내일 새벽에 다시 공격을 재개하기로 하였다. 조헌은 각 부대에 적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도록 지시하고 북문을 담당하고 있는 방어사 이옥(李沃)에게는 특별히 당부를 해서 적이 어둠을 틈타 도주하지 못하도록 매복을 세워 철저히 감시하도록 했다. 성안에는 밤새도록 불빛이 요란하고 깃발들이 무수히 나부꼈다. 

8월 2일 새벽, 공격을 재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적중(敵中)에서 나온 한 여인이 조헌을 찾아와서 고하기를 “왜적의 무리들이 이쪽 군대의 상태를 바라보고 크게 놀라 얼굴빛이 변하면서 ‘이 의병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죽기 직전에도 조금도 꺾이는 기세가 없으니 더불어 싸워서는 안 되겠다’ 하고는 이에 화톳불을 피우고 깃발을 세워 병졸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시체를 모두 태워버린 뒤에 이미 진영을 버리고 밤새 도망갔습니다”라고 성안의 사정을 알려주었다.

조헌이 아침 일찍 의병을 이끌고 성안으로 진입하였으나 적의 반응은 전혀 없고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 여인의 말대로 이미 적들은 도주했던 것이다. 밤새 적의 도주를 몰랐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고 이옥(李沃)으로 하여금 북문에 관군을 매복하여 적의 도주를 방해하도록 당부하였으나 이옥은 이를 두려워하여 시행하지 않음으로써 적을 도주하게 놓아둔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옥을 원망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이로서 청주성은 의병과 승병 그리고 관군의 합동작전으로 적으로부터 되찾게 되었다.

이때 성안에는 수만 석의 곡식이 있었다. 왜적은 도망하는데 급급해서 손도 대지 못하고 떠났다. 조헌이 방어사 이옥에게 말했다. “이 곡식을 나누어 어려운 백성들을 구원하고 소와 말 수백 마리는 각 마을에 나누어주어 농사짓는데 대비하도록 하자” 그러나 이옥은 자기의 전공(戰功)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 나머지 “이미 순찰사와 의논했는데 여기에 머무를 수가 없다고 결정이 났다. 그러므로 이 곡식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왜적이 다시 점거했을 때 밑천으로 삼도록 할 수는 없다” 하고는 곡식을 모두 불사르고 가버렸다. 조헌이 돌아와 보니 거친 쌀 몇 가마니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청주성 탈환은 전략적으로 충청과 전라지역으로 진출하려던 적의 거점을 빼앗았고 전국에서 어렵게 싸우는 의병과 관군의 전투의지를 고양시킴은 물론 백성들에게는 안도감과 희망을 안겨준 역사에 길이 기억될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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