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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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뿌리고(104)
  • 조종용 작가
  • 승인 2023.03.0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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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이다

청주파적후장계별지(淸州破敵後狀啓別紙)

조헌은 그동안 기병과 그 후의 활동 상항을 임금께 상세히 아뢰지 못했다. 적의 진격에 따라 행궁의 이동은 빈번했고 적진을 뚫고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선조가 잠시 개성에 머물다가 5월 3일에 다시 평양으로 파천했다. 임진강전투의 패보(敗報)가 전해지고 왜적이 개성까지 진입하자 다시 영변으로의 이동을 결정한다. 6월 15일 평양이 실함 되고 6월 22일 국경 지역의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했다.

조헌이 전승업(全承業)을 불렀다. 의주 행궁으로 청주성 전투에 대한 장계를 올리려는 것이다. 전승업으로 하여금 의주 행궁을 다녀오는 임무를 맡기면서 종사관 곽현(郭賢), 아들 완도(完堵)를 수행하도록 했다. 행궁이 있는 의주까지는 적중(敵中) 지나야 하는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그리하여 보다 안전하고 빠른 배를 이용하도록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때 청주성 싸움의 결과를 보고한 “청주파적후장계(淸州破敵後狀啓)는 전하지 않는다. 만약 그 내용이 전해졌다면 전투의 상세한 부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별지(別紙)뿐이다. 그 내용도 청주성 전투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 의병과 관군이 갈등 그리고 관군의 실상을 그대로 보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장계의 별지를 통해서 당시 국난 속에서의 관군의 실태를 자세히 조명해 볼 수 있다.


청주파적후장계별지(淸州破敵後狀啓別紙) (壬辰 八月 初 一日)

신이 듣건대 천하의 형세는 합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하므로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적은 수의 적을 공격할 때에는 일부의 군대로써 하지만, 많은 수의 적을 공격할 때에는 반드시 합공(合攻)함으로써 승리를 가져옵니다. 이것이 필연의 이치인가 합니다.

전라의병장(全羅義兵將) 고경명(高敬命)은 순찰사(巡察使) 이광(李洸)이 왜적을 몹시 두려워하여 머뭇거리고 싸우지 않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해서 격문(檄文) 가운데에 그 죄상을 모조리 들어서 말하였고 또 의병을 모집함에 있어서도 관군(官軍)을 많이 모았다 하였으므로 이광(李洸)이 이것으로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고경명이 금산(錦山)의 왜적과 싸울 때에도 (이광은) 도와주지 아니하였으며 방어사(防禦使) 곽영(郭嶸)도 고경명이 이틀 동안 힘을 다하여 싸울 때에도 앉아서 보고만 있고 구원하지 아니함으로써 패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군사(軍師)의 일을 맡은 관헌이 죽인 셈이오니 나라에 군율(軍律)이 있을 진데 이광(李洸)과 곽영(郭嶸)의 죄는 모두 목을 베어 죽여야 마땅합니다. 신은 충청도 순찰사 윤선각(尹先覺)과 방어사 이옥(李沃)과는 일찍부터 교분이 있었으므로 청주의 왜적을 쳐부수러 가던 날에 글로써 서로 경계함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운선각과 이옥에 대해서는 그리 크게 노하지는 않사오나 그 막하(幕下)에 있는 비장(裨將)들이 꾀어서 권하는 말이 심지어는 “의병장이 관찰사와 방어사를 절제(節制)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진군(進軍)할 즈음에는 몇 차례나 같이 진군하기를 독촉하였으나 방어사 이옥(李沃)의 비장들은 서로 바라만 보면서 진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북을 치고 진(陣)에 나아가서 몸소 군사들을 독려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고경명(高敬命)과 같은 죽음을 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신은 호서(湖西)에서 장수(將帥)는 교만(驕慢)하고 또 군졸은 몹시 게으른 풍습(風習)을 자주 봅니다. 이를 내버려 두고 바로잡지 아니하면 비록 천 년 동안 군사를 모집하여도 결단코 회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호서와 호남지방을 보전하여 왕가의 곳간으로 만들려고 하신다면 방어사의 비장 가운데에서 몹시 게으른 자를 뽑아 목 베이시고 또, 관찰사로 하여금 일도(一道)의 힘을 합하여 궁한 경지에 빠진 왜적의 기세를 꺾고 시일을 지연시켜서 군사기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여 주시면 신은 스스로 행진에 힘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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