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고을 옥천읍 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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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고을 옥천읍 구읍
  • 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 승인 2019.11.0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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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표 시인·옥천향토전시관 명예관장

옥천읍 구읍은 지리적으로 옥천읍 지나는 경부고속도로 옥천톨게이트 동북부지역으로 고려시대 옥주부터 조선 태종 때를 거쳐 옥천 관아가 1919년까지 606년 동안 옥천군청이 있었던 상계, 하계, 문정, 죽향, 교동, 동안리 6개 마을 말한다.

구읍 북쪽에는 옥천 구읍이 한눈에 내려 보이는 옥천군 진산(鎭山)인 마성산(409m)과 국수봉, 늘티와 1960년대 축조된 교동저수지가 위치하며 동편은 수북리 ‘대청호 향수호수길로 넘는 나부티 고개가 있다. 그리고 남쪽은 옥천농공단지가 들어선 남산과 서쪽은 명가 뒷산 사직산과 서산성이 있던 성황당산이 각각 위치한다.

구읍의 한 가운데를 흐르는 문정천은 교동들, 상·하계들, 이방들, 문정들 옥천고을 평야지를 적시며 흘러가 서편 삼거리에서 서화천(소옥천천)과 합류한다.

조선시대 옥천의 군청 관아가 위치한 구읍은 행정, 경제, 교육의 중심지로 유서 깊은 역사의 곳으로 옥천군 통치기관인 관아는 물론 중앙 관리가 공무 중 묵었던 객사, 유림의 회합장소인 옥주사마소 위치했던 상계리, 하계리와 옥천 관아 관성문루이문 거리에 있었던 문정리, 북편의 죽향리, 옥천향교에서 유래한 교동리가 있다.

옥천읍 금구리에 1905년 경부철도 옥천역이 생기고 1919년 옥천군청과 각급 기관이 신시가지인 옥천읍 금구리와 삼양리로 이전하였고 옥천면사무소마저 금구리로 이전하며 구읍 점차 부심권으로 쇠락하였다. 1988년 이후 정지용·육영수생가, 교동저수지 호수공원, 문학공원, 전통문화체험관 등이 조성되며 이와 함께 전통적인 역사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서 관광객이 몰려오고 쾌적한 주거지로 옥향, 향수아파트가 들어서며 새롭게 활기력을 띠고 있다.

구읍은 옥천역문화유적의 보물창고로 옥천군 관아 터와 구군수관사, 옥주사마소, 옥천향교와 전통 고택인 문정리 문향헌(춘추민속관)이 있다. 그리고 아리랑 고택은  대한제국의 오상규 철도국장이 살았던 생거지로 그는 ≪서우학회≫ 회장으로 상해 임시정부 박은식 2대 대통령과 도산 안창호 내무총장,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 등 애국지사들과 1905년 을사늑약 후 관직을 그만두고 애국교육계몽운동을 하다가, 1910년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로 하계리 샘실로 낙향하고 그 후 살았던 생거지다. 그 옆쪽에 민주회복운동의 선각자 정구영 선생 생거지가 있다. 죽향리의 김기태 고택인 찻집 ‘그냥’과 고재만 가옥, 교동리 육영수 생가, 하계리 정지용 시인 생가와 문학관 등이 구읍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밖에 죽향초등학교 안에 죽향리삼층석탑과 국가등록문화재인 죽향초구교사, 교동리보호수와 정광제 효자각이 있다.

일제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용 생가 다리판석으로 써서 독립정신을 일깨우는‘황국신민서사비’와 죽향초 구교사가 있다. 한편 춘추민속관 밖 번잡한 이문거리 우물터 도로변에 당시 옥천군수가 오가는 주민들에게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토록 하기 위해 건립한‘천황탄생 천장절기념비’는 해방 후에 주민들에 의해 문향헌 공터에 묻혀졌다고 주민들에게 전해오며 이후 몇 년 전에 발견되었다. 애국지사 김규흥 선생이 설립한 창명학교는 죽향초 전신으로 1906년 설립됐다. 옥천여중은 죽향리 김기태 고택을 매입한 한치봉 선생이 기증하여 옥천여중과 여고의 모태가 되었다.

전통역사문화의 산실로 옥천고을 구읍은 상계들에 ‘전통체험관’ 그리고 ‘구읍골목투어 코스’가 완공될 예정으로 수북리 대청호반을 따라 설치한 11월 9일 걷기대회가 열리는‘향수호수길과 함께 옥천구읍 관광이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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