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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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의 어린 시절
  • 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 승인 2019.12.0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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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충북일보 전 논설위원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의식 있고 성숙한 삶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다음은 그에 대한 ‘답의’ 취지로 쓴 글이다. 좀 유치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뜻을 ‘음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철수는 일곱 살이 되어 재동(齋洞)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철수가 이 학교에 들어간 것은 단순히 이 학교가 자기 동네에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를 면밀하게 조사해서 이 학교가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확신을 가진 다음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들어가서 그때까지 알지 못하던 노래도 배우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고, 놀이도 하고, 신이 났다. 자기 학교가 자랑스러웠다. 철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재동 학교 최고”라고 합창했다. 그 옆 동네에 있던 교동(校洞) 초등학교는 보나마나 ‘똥통 학교’였다. 그 옆 교동 학교가 무슨 학교인지, 어떻게 가르치는 학교인지, 화장실이 몇 개인지 알아볼 의사도 없었다. 혹시 길을 가다가 철수 또래의 교동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우리 학교 최고 너의 학교 똥통! 하며 놀리기도 하고, 너희 학교는 변소가 교실보다 많다는데 도대체 몇 개냐? 하고 따져가며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다.

공부시간에도 우리 학교 최고 남의 학교 똥통이라는 진리를 어떻게 더욱 공고히 하고 더욱 널리 알릴까 궁리하고 토론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이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지나고, 상급반 학생이 되었을 때 철수는 서서히 자기의 단순했던 ‘처음 믿음’이 흔들림을 발견했다. 우리 학교 최고 다른 학교 똥통이라는 단순하고 명백했던 공식이 여러 면에서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말은 자기가 가진 모교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을 표현한 사랑의 말이지. 영원불변하는 객관적 통계적 진리에 대한 공식 선언 같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셈이다. 그래서 철수는 자기의 생각을 자기 학교 친구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그들과 의논했다. 이젠, 우리 학교 최고, 다른 학교 똥통이라는 생각을 그만하자. 공연히 그런 걸 따지고 증명하려는 데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이제부터는 그 대신 어떻게 하면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고, 노래 운동 등 특기를 잘 살리고 착하게 서로 돕는 어린이로 자라날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문제에 신경을 쓰자. 쓸데없이 우리 학교만 잘났다고 우쭐거리면서 남의 학교 욕이나 하고 돌아다녀서 남의 비웃음을 사거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러다 남에게 비웃음을 받으면 이것이 마치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받아야 하는 핍박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가능하면 옆에 있는 다른 학교들하고 협력해서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데 힘쓰자. 등등의 제안을 했다. 몇몇 학생은 자기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고 하면서 철수의 생각을 좋게 여겼다. 선생님 중에서도 물론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기는 분이 있었다.

더러는 이제 선생님과 학생 대표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한번 정식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여 훌륭한 학생 됨의 근본이 무엇인지에 모두 함께 더욱 깊이 생각하고 그 일을 위해 힘쓰도록 하자는 제안도 했다. 그런데 일부 학생 사이에서 야단이 났다. 대부분 재동 학교에 금방 들어온 저학년 학생이었고 또 고학년이 되었어도 아직까지 초등학교 저학년의 사고방식이나 그때에 설정된 고정관념 특히 남이 나빠야 상대적으로 자기가 올라간다는 단순 논리 등에서 헤어나지 못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외쳤다.

이제와서 다른 학교가 똥통학교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리냐?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지금껏 지켜온 진리를 배반하는 것 아니냐? 순수를 저버리고 똥통과 타협 하는 것이 아니냐? 철수 같은 학생이나 지도자는 뭔가 잘못된 사람이 아닌가? 등등의 의문을 제기하고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k선생님 같이 스스로 교육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선생님도 이런 소란에 동참하여 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이런 학생을 부추긴다는 사실이었다. 철수는 기가 막혔다, 자기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순수냐 아니냐. 진리를 수호하다가 핍박을 받는 것이 두려우냐 아니냐, 진리를 떠나 세상과 타협하느냐 아니냐 따위의 문제와는 하등  관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라나느냐 자라나기를 거부하느냐 새로운 빛에 스스로를 열어놓느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를 계속하느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잘 끼워진 것이라고 계속 고집하느냐 철모를 때의 일을 솔직히 고백하고 그러기를 중단하느냐 등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육의 기본이 무엇인지. 다시 심각히 검토하여 건전한 초등학생으로서 아름다운 인격으로 꽃 피우는 데 힘쓰자고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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