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암울한 밤, 굴곡진 삶의 표징, 옥천방언으로 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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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암울한 밤, 굴곡진 삶의 표징, 옥천방언으로 구사
  • 김묘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12.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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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은 정지용 시적 발상의 한 모델로 노정 -
- 시대상황이 몰고 온 불안증을 할머니와 같은 고향에 의지하며 치유 -
김묘순 문학평론가

밤뒤를 보며 쪼그리고 앉았으랴면, 앞집 감나무 위에 까치 둥어리가 무섭고, 제 그림자가 움직여도 무섭다. 퍽 치운 밤이었다. 할머니만 자꾸 부르고, 할머니가 자꾸 대답하시어야 하였고, 할머니가 딴데를 보시지나 아니하시나하고, 걱정이었다.
아이들 밤뒤를 보는 데는 닭 보고 묵은 세배를 하면 낫는다고, 닭 보고 절을 하라고 하시었다. 그렇게 괴로운 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워 참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둥어리 안에 닭도 절을 받고, 꼬르르 소리를 하였다.
별똥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것이었다. 별똥을 주워 왔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날밤에도 별똥이 찌익 화살처럼 떨어졌었다. 아저씨가 한번 모초라기를 산채로 훔켜잡아온, 뒷산 솔푸데기 속으로 분명 바로 떨어졌었다. (          는 논자 주)
   
    별똥 떨어진 곳
    마음해 두었다
    다음날 가보려
    벼르다 벼르다
    인젠 다 자랐소.』
     - 「별똥이 떨어진 곳」 전문(『문학독본』, 박문출판사, 1948, 20~21면)

「별똥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는 정지용의 고향, 옥천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작품에 부려놓은 방언들이 그의 시적 발상의 한 모델로 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우리는 ‘밤뒤’, ‘둥어리’, ‘치운 밤’, ‘모초라기’, ‘솔푸데기’, ‘마음해’ 등의 향토적 색채가 짙은 방언에 집중하게 된다.
‘밤뒤’는 ‘밤에 잠을 자다가 밤중에 뒤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밤뒤’와 ‘별똥’이라는 소재 선택을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별똥’과 ‘밤똥’, 이 둘의 관계는 동화적인 해학으로 고향의 저 언덕너머로 멀리 사라져간 차라리 처연하기 조차한 그리움으로 우리를 초대하기도 한다. 이렇게 그가 마당 가득 뿌려놓은 서정적 분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온통 하얗게 내려앉고 있음을 독자들은 감지하고 나설 것이다.
‘둥어리’는 ‘새나 날짐승이 새끼를 위해 지은 집, 즉 새집 종류’를 뜻한다고 한다. ‘둥어리’라는 향토색 어린 방언을 사용하여 ‘둥지’의 짧고 단순한 어감보다는 훨씬 정감어린 표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둥어리’라는 3음절의 어휘가 주는 친화력은 표준어인 ‘둥지’가 갖는 어느 말솜씨와도 겨룰 수 없는 응전력을 지닌다. ‘둥지’가 지닌 짧은 어감보다 ‘둥어리’가 보여주는 지속력 있어 보이는 어휘는 ‘따글 따글한’, ‘주둥이가 반짝이며 맑아서’ 감나무 위 까치 둥어리에서 금방이라도 ‘짹째글’ 거리며 수선을 피울 듯이 다가오게 한다. 그러나 화자는 “까치 둥어리가 무섭고, 제 그림자가 움직여도 무섭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치운 밤’으로 형상화해 놓고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여 진다.      
‘치운 밤’은 ‘추운 밤과 그 추위로 인해 또는 어둠으로 인하여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밤’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하물며 ‘퍽 치운 밤’이라는 즉, ‘무척이나 매우’라는 의미를 수반하는 부사어 ‘퍽’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고 있는 ‘치운 밤’이다. 이 밤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밤일 수도 또는 작가 자신의 굴곡진 삶의 표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그는 고향과도 같은 할머니를 부르며 확인을 한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를 부르는 것이다. 그것도 ‘자꾸 부르고’ 할머니는 의례적으로 불평 없이 ‘대답’하여야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딴 데를 보아도 아니’ 되었다. 할머니가 선사하는 의미는 어머니가 주는 그것과는 작품을 이끄는 바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모든 생산의 근원이며 원류이고 주체일 수 있는 반면 할머니는 포용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는 「별똥이 떨어진 곳」에서 사소한 낭만적인 발로까지 용이하게 수긍하기는 할머니보다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버지, 나의 수직적 계보는 어머니보다 훨씬 낭만적 어리광에 대한 포용 정도의 진폭이 할머니 쪽이 넓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가 살아낸 스산했던 시대와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증을 할머니와 같은 고향에 의지하며 치유하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그의 산문에서 할머니를 상정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할머니는 밤뒤를 보는 특효약으로 닭에게 절을 하라고 이른다. 이에 “닭 보고 묵은 세배”를 하고, 닭은 절을 받고 “꼬르르” 답례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괴로운 일이 아니” 되었다. 이것은 촌로와 어리석은 손자가 벌이는 우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실제 이야기인 사실성과, 이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진실성이 살아있다. 즉, 할머니와 화자의 밤뒤 병에 대한 치유를 비는 소망이 “꼬르르”라는 답으로 귀결점을 찾고 있었다.
정지용의 「별똥이 떨어진 곳」에 나타난 방언은 옥천군 동이면 적하리 정수병 옹(80세),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생 곽순순(73세) 옹의 구술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는 구술당시 연세. 방언조사에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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