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기호의 시각화 시도
상태바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기호의 시각화 시도
  • 임요준기자
  • 승인 2020.01.0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재 정지용, 기호의 시각화 시도
지난해 11월 13~16일까지 열린 제9회 일본 지용제에서 김묘순 문학평론가는 정지용의 시에서 발견된 언어외적 기호의 시각화를 최초로 발표해 한국문학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어에서 조선어로, 다시 일본어에서 최종 조선어로. 네 번의 개작 과정을 거친 정지용의 시 ‘슬픈 인상화’.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비련의 시인은 슬픈 인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시인의 슬픈 인상화는 지난 호(196호) ‘4번의 개작 통해 뭘 말하고 싶었나’에 이어 이번 호에도 계속 됩니다. 지난해 11월 13~16일까지 열린 제9회 일본 지용제에서 ‘정지용을 말한다 정지용의 슬픈 인상화에 대한 소고’의 논문을 통해 그의 천재성과 식민지 국민의 설움이라는 심상까지 들여다 본 김묘순 문학평론가. 수십 년 ‘정지용 바라기’를 자청한 김 평론가는 슬픈 인상화에서 표현된 언어외적 기호학을 발견하고 정 시인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정지용의 시혼(詩魂) 속으로 들어갑니다.편집자 주

‘슬픈 인상화’의 조선어에서 조선어로 개작

 

 

 

 

 

 

 

 

 

 

 

김 평론가는 슬픈 인상화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상해로 떠나는 시적 대상을 배웅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 화자는 ‘오랑쥬 껍질 씹는’듯한 씁쓸한 이별과 마주한다. 화자는 이러한 상황을 1연에서 첫여름의 저녁때를 후각적 심상으로, 2연에서는 해안선 쪽 길옆 나무에 걸린 전등의 모습을 시각적 심상으로, 3연에서는 築港(축항)과 稅關(세관)의 정경을 청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적 화자는 4연에서 “하이얀”이라는 색채를 동원해 시각적 심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정지용은 슬픈 印像畵에서 심상 즉 다양한 이미지로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26년 學潮(학조) 1호에 실린 작(作)은 총 5연으로, 1935년 ‘정지용 시집’에는 총 6연으로 구성돼 있다. 이 시는 마지막 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표기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김 평론가는 기호학적 시각화와 관련 개작과정에서 발생된 기호를 주시했다. 그러면서 정지용의 기호의 시각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말줄임표)”를 사용한 형상화 방법이다. “저녁 → 저녁 때………”에서 “저녁”는 1어절로 한 호흡에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반면 “저녁 때………”는 2어절이다. 게다가 긴 말줄임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시간의 긴 흐름과 첫여름이라는 계절의 여운을 표시한 시각적 처리다. 그리고 “失心한風景이여니. → 失心한 風景이여니……”에서 “失心한風景이여니.”는 8음절 1어절로 나타난다. 그러나 “失心한 風景이여니……”에서는 앞에서와 같은 8음절이지만 2어절로 나누어 놓았으며, “.”가 “……”로 대치되고 있다. 이는 정지용의 유학지인 일본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의 입장인 단순한 심리를 고국으로 돌아와서 교육자·아버지·조선의 지식인으로서 갖게 된 복잡한 갈등 발로의 표현이다. 이 표현을 그는 기호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슯흠이여니. → 시름……”에서도 “슯흠이여니.”의 5음절을 “시름……”으로 “……”를 이용하여 기호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는 “눈물을 구슬같이 알고 지어내던, 그러나 시류(時流)에 거슬러 많은 눈물을 가벼이 휘파람불며 비누방울”처럼 날렸다는 정지용의 슬프지만 그 슬픔을 초월하였던 그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정지용 자신이 겪은 혹은 겪었을 법한 슬픔, 그 슬픔의 골이 더 깊어진 화자의 시름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둘째, “●●●”을 “………”로 치환한 경우다. 즉, “●●●”의 일정한 대상인 “汽笛(기적)소리”를 향하여 있던 욕구가 환치되며 “………”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 시의 화자였을 정지용의 심리적인 태도에 관여하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의 “汽笛”소리가 “●●●”처럼 크고 진하고 짧은 울림이었다면, 1930년대 한국문학사의 거두였던 정지용에게 울려오던 조선에서의 “汽笛”소리는 좀 더 잔잔하고 긴 여운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당시 조국은 일제강점기라는 긴 다리를 건너고 있었지만 정지용의 고향이었고 뿌리였으니 일본에서 듣던 “汽笛”소리와는 다를 수 있다. 정지용은 일본 축항에서 들었을 “汽笛”소리와 조선에서 들려왔을 “汽笛”소리에 감정을 포함한 기호라는 대상으로 돌려 대치시키고 있었다.

셋째, “포풀아 - 늘어슨 → 길옆나무에 느러 슨”에서의 “-”의 시각화 작업이다. “포풀아 – 늘어슨”은 2어절이다. “길옆나무에 느러 슨”은 3어절이다. 그러나 “포풀아 –”처럼 “-”을 사용하여 1어절을 추가하여 시각적으로 빈 어절을 채우고 있다. 이는 “-”의 기호를 사용함으로 무음 실현으로 유음 실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2어절에서 무음 부분에 “-”을 사용함으로 3어절의 유음 실현을 성립시키고 있다. 이는 “-”이라는 기호를 사용하면서 음성인 음절이나 어절에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넷째,  ‘.(마침표)’,  ‘!(느낌표)’”의 사용이다. “洋裝(양장)의點景(점경). → 洋裝의 點景!”에 나타난 시각화 작업이다. “洋裝의點景.”은 1어절 5음절로 문장의 서술을 종료하고 있다. 반면 “洋裝의 點景!”에서는 2어절 5음절로 어절을 분리하며 느낌표를 사용하여 감탄형으로 종료하고 있다. “洋裝”을 차려입은 그가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 “洋裝의點景.” 묘사는  “.(마침표)”로 단호하게 “洋裝”을 입은 그의 모습을 차단하고 있다. 이와 달리 “洋裝의 點景!”에 나타난 묘사는 “洋裝”을 입은 그의 모습에 “!(느낌표)”로 감정을 실어주고 있다.

다섯째, “┃ ┃”이나 “   ”의 기호 사용을 보인 시각화 작업이다. 독특한 기호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 기호의 의미도 특이성을 지닌 시각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 ┃이나    의 기호를 사용하여 전등이 세로로 달려있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먼 “海岸(해안)” 쪽으로 “포풀아” 나무가 늘어선 길에 전등이 걸려있다. 전등이 가로로 수평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등은 길을 따라 직교하며 수직으로 달려있다. 보통 전등은 길을 따라 평행선을 그으며 길과 평행하게 늘어서 있다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정지용의 시각은 달랐다. 전등을 길과 직교시키며 수직으로 매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풀아”도 길과 직교하며 수직으로 자라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1925년 학조 1호에서만 나타난다. 정지용의 유학시절에 일본어로 쓴 ‘仁川港の或る追憶(인천항의 어느 추억)’(동지사대학예과학생회지 4호, 1925)이나 ‘悲しき印像畵(슬픈인상화)’(近代風景(근대풍경) 2권 3호, 1927)에서는 “電燈の數。 數。”(전등의 수。수。)로 나타난다. 물론 슬픈 인상화(정지용 시집, 1935)에서도 이러한 부분은 나타나지 않는다. 1935년 정지용 시집에서는 “電燈。 電燈。”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시집은 박용철이 주도적으로 추진하였으니 그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자 한 자도 허투루 놓이는 것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던 칼칼한 성격의 정지용이 그의 의도에서 벗어난 단어선택을 섣불리 용인하지 않았으리라는 유추는 억지가 아닐 것이다. 이로 보아도 정지용의 시적 의미를 형상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기호를 사용하여 시각화 작업을 하였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여섯째, “˙˙˙(강조점)”을 이용한 시각화 작업이다. “세메ㄴ트 → 세멘트”와 “오레ㄴ지 → 오랑쥬”에서 “세메ㄴ트”나 “오레ㄴ지”처럼 외국어 표기에는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강조점)”을 사용하여 외국어라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세메ㄴ트”나 “오레ㄴ지”에서 “초성 + 중성”으로 1음절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서 종성으로 쓰여야할 “ㄴ”은 따로 떼어내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정지용은 시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하여 기호들을 사용했다. 언어로 다 전하지 못하는 정지용의 마음. 그것은 정지용의 사고였고 기호적 문자의 지시였다. 이러한 정지용의 흔적은 삭제 불가능했다.

김 평론가는 정지용의 기호의 시각화에 대해 “문학 해석의 본령은 작가의 의도 파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 파악에 있으며, 문학에 쓰인 언어는 작품의 의미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학 언어는 감각적 인식과 전달효과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상징 언어다. 시각언어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을 갖는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라며 “이러한 시각언어는 언어로 불가능한 표현의 영역까지를 관여할 수 있다. 기호인 시각적 언어의 사용은 정지용의 시세계를 문학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와 심미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의 업적을 평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