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같은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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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같은 연인
  • 천성남편집국장
  • 승인 2016.05.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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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지용제가 3일간의 열전을 끝내고 막을 내렸다. 어떤 잔치고 잔치가 끝나고 난 뒤는 어딘지 모르게 휑한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옥천읍 정지용생가 일원(구읍)에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방문객들도,지역민들도 모두 하나가 되어 잔치다운 잔치를 벌였다.

28회째를 맞는 정지용문학상 시상식에는 한국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역대 지용문학상 수상자들과 문인, 관계자들이한껏 자리를 메웠다.

현대시의 거장인 정지용을 기리기 위해 선정한 이번 수상자는 바로 50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문단에서 글을 연마해 온 경남거창 출신의 신달자 시인이다. 나이에 걸 맞는 단아한 모습의 그는 몸이 건강하지 못함을 못내 안타까워하듯 조심히 무대를 올랐다. 그는 수상 소감에 대해 “남편의 시로 상을 받게 돼 부끄럽다”는 말로 조용히 심중을 꺼내놓았다.

누구나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24년간 병석에 있었던 남편의 존재는 그렇게 아내에게 미움과 고통과 애절함과 애가 끊길 듯 서러움을 함께 주었으리라. 그러나 그 시인은 절규하듯 통한을 풀어내고 “그가 떠나고 난 뒤 그의 빈자리를 메워 줄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었노라”고 나직이 고백했다.

아! ‘국물’같은 인연이여. 누구나 같은 일을 겪어보면 인지상정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아름다운 결말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국물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너무 빨리 불을 꺼버리는 쉬운 인연법에 의해 우리는 이러한 부끄러운 시인의 고백을 들으며 어찌 보면 되레 부끄러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때론 남편이, 아내가 옆에 있으면 보기 싫고 귀찮고, 때론 얄미워서 죽을 것 같지만, 거기에는 아직 깊이 우러나지 않은 국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나알까.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중략) …
바다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신달자 시인의 28회 정지용문학상 수상作 全文)

국물을 사랑하는 한국인은 아마도 이시를 나직이 읽을 때마다 그의 절절한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오늘 이 시대에 그가 주고자 했던 ‘국물’이란 시는 마치 정지용 시인이 당시에 느꼈던 서글픈 애환과 고통, 애절함 등을 표현한 최고의 시로서 지하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민족 정서의 한과 슬픔을 정화시켜 전통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은 우려내고 우려내 만들어진 국물이 혀에 감칠맛을 돌게 하는 최고의 미학임을 알게 한다. 맛으로 슬픔을 느끼는 미학의 문학이 바로 정지용 시인이 추구했던 한의 시적정서가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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