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예술혼을 담아 ··· 32년 이어온 ‘서각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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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예술혼을 담아 ··· 32년 이어온 ‘서각인생’
  • 이성재기자
  • 승인 2016.06.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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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진덕(53)스님
절의 현판을 보고 서각의 길로 들어서 작품 활동 매진
지용제 등 참여 대중에게 서각 제대로 알리는 데 노력
칼과 끌·망치를 사용해 조각하는 복합적인 종합예술체

나무를 깎아 작품을 새기는 예술 분야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특히 우리 전통 예술인 서각은 전통 방식의 그림과 글씨 등 다양한 것을 나무에 새기는 예술의 한 갈래다. 칼로 나무를 빚어내는 과정은 마치 수도자의 수련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숭고하면서도 경건한 것이기에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더 없이 소중한 예술이다. 서각은 공공건물이나 사찰, 재실의 현판을 비롯한 주련(柱聯) 등 주로 글자를 목판에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칼과 끌, 망치 등을 사용해 글씨나 그림의 특징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서각은 서예와 미술, 조각, 목각 등을 두루 겸비해야하는 종합예술이다.

 

■ 21살 독학으로 서각 공부 시작해

1963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전리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진덕(53) 스님은 14살 때부터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내 미술대회와 전국대회에서 곧 잘 입상을 하곤 했다.

스님은 “교재나 가르쳐주는 선생도 없이 혼자 힘으로 미술을 배운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며 “그래도 미술대회에 나가 입상할 정도의 재능은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동양화를 그리기 위해 전국에 경치 좋은 곳을 돌아다니던 그는 18살이 되던 해 잠시 나무뿌리공예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처음 나무뿌리공예를 할 때 뭣도 모르고 시작했다”며 “어린나이에 나무뿌리 구하기도 여의치 않아 동양화 그리기와 나무뿌리공예를 위해 전국을 다녔다”고 말했다.

전국을 떠돌았던 스님이 서각을 만난 것은 21살의 나이에 우연히 경남에 있는 한 절의 현판을 보게 되면서 서각의 길로 들어서 32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스님은 그 때를 회상하며 “절에 걸린 현판을 보고 있자니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무뿌리 구하기도 힘들고 동양화에 흥미를 잃던 중 서각에 세계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일본서 3년 동안 200여점 작품 판매

스님은 창원에서 1983년도 한국미술대전에 서각작품을 처음 출품하면서 서각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됐다.

창원에서 18년, 진천에서 10년, 일본 나고야에서 3년을 활동하고 2007년 옥천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본 나고야에서 3년 정도 서각활동을 하면서 200여점의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다”며 “어느 순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낸 작품이 너무 가벼워 보이고 가치 없게 느껴져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하게 됐다”고 말했다.

옥천에 온 지 3년 만에 민예총 회원의 권유로 지용제에 참여해 현재까지 방문객들의 볼거리 제공을 위해 장승 깎기, 작품전시 등을 해오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각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지용제 등 행사에 참여해 대중들에게 서각을 제대로 알리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자연재료와 전통방식 고수해

서각작품은 우선 붓글씨를 쓴 뒤 이를 나무나 석판에 붙여 칼·망치·끌 등으로 조각하고, 토분과 안료 등으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 작품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몇 개월씩 걸리는 게 보통이다.

‘쉽고 빠르게’를 중시하는 사상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스님은 여전히 자연과 전통을 고집한다. 조금 수고롭더라도 자연재료와 전통방식을 고수해 나무에 혼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한다. 그래서 서각작품은 더 깊은 멋을 가지고 있다.

그는 “칼은 붓보다 훨씬 예리하고 날카롭기 때문에 서각은 글씨나 그림에 비해 섬세하고 예술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며 “따라서 붓글씨보다 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붓글씨를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글을 썼는지 생각하면서 조각하는 작업에 재미를 느낀다”며 “남의 글자는 아무리 봐도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어 작업을 할 때 글 쓴 사람의 마음가짐을 알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 서각의 결정체는 음각이라고 생각해

서각은 글자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양각, 안으로 들어가게 새기는 음각, 음각과 양각을 섞어서 새기는 음양각, 위 세 가지 방법을 두루 사용하는 음평각으로 분류된다.

서각의 네 가지 기법 중 가장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방법은 음각으로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관찰하면 글씨가 튀어나와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 보면 움푹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다.

스님은 “서각의 결정체는 음각이라고 생각하고 글자를 몰라도 붓글씨의 시작점과 끝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어렵다”며 “최소 10년 정도는 단련해야 붓글씨가 흘러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각은 여러 가지 기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동양화나 서예 등 전통예술의 형식이 2차원의 종이 안에서 머무르는 데 반해 그것을 3차원의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이다.

그는 “서각을 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나무를 깎는 사람이라면 왜 특정한 칼을 선택해 사용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어떤 조각 방식을 선택했을 때 어느 나무를 선택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주제와 기법에 맞는 나무 선택해야

각자를 할 때 쓰이는 재료로는 나무가 주로 쓰이는데 나무는 재질이 아름답고 재료 구입이 쉬우며 작품을 한번 만들면 영구적으로 보존이 가능한 점 때문에 선호돼왔다. 목공예에서는 빛깔과 무늬가 진하고 선명한 나무를 선호하지만 서각을 할 때는 글씨가 죽기 때문에 그런 나무는 피한다.

그리고 나무의 무늬는 조각할 때 대칭이 되는 것이 나중에 보기 좋기 때문에 무늬의 균형을 잡아 줘야 한다. 또 무늬에 따라서 각이 죽는 경우도 있어 잔글씨는 가급적이면 무늬목에 각을 하지 않고 무늬목을 원할 경우에는 각을 하기 전에 무늬를 약간 죽인다.

일반적으로 각자에 많이 쓰이는 나무는 소나무·잣나무·은행나무·느티나무·박달나무 등이 사용된다.

스님은 “작업을 할 때 나무의 결대로 조각을 하지 않으면 갈라지기 때문에 나무의 특색을 잘 살려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나무의 질감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법에 맞는 나무를 선택해야한다”고 말했다.

또 “칼이 글씨에 따라 막힘없이 칼질을 해나갈 때는 2~3일 밤을 새워도 힘이 들지 않지만 마무리 단계에서 칼이 글씨에서 벗어나거나 나무가 결에 따라 갈라지는 일이라도 생기면 지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2년 후 독립개인 종합작품전 열 계획

현재 스님은 청성면 조천리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있다. 3개월 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상당부분 회복됐지만 건강을 염려해 잠시 쉬고 있다.

그는 “앞으로 2년 정도 몸을 추스르고 독립개인전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서각, 장승, 뿌리공예, 그림 등을 전시하는 종합작품전을 꼭 하고싶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가장 배고프고 힘들었을 때 만든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의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고 특별한 날을 기념해 만든 작품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스님은 “작품판매에 연연하지 않는다. 돈이 많아지면 활동에 사심이 들어가 작품이 가벼워지게 된다”며 “과거 일본에서 한국으로 되돌아 온 이유도 사심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서각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 작품을 필요로 하는 지인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스님은 작품을 돈과 무관하게 많이 나누고 대중들에게 전시하고 싶어 한다. 예술도 상술로 변모해 가는 문명의 이기 속에서 본인의 능력으로 만든 작품을 사회에 되돌리고 싶다는 스님의 모습에 참 예술인의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전시와 관련된 문의나 작품 정보는 진덕스님(☎ 010-5101-3566)에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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