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깜빡 비상등이 켜졌어요
상태바
깜빡깜빡 비상등이 켜졌어요
  • 동탄 이흥주 시인
  • 승인 2020.02.20 14: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의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이 조금 전의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건망증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건망증이란 단어가 갑자기 생각이 안나 헤맸으니 웃을 일이다. 깜빡거림이 심해서 얼마 전 치매검사를 받아보았는데 치매는 아니라고 한다. 이년 전인가 한번 받아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두 번 다 치매는 아니라니 안심은 되지만 나이가 있으니 걱정이 된다.

 깜빡거리는 건망증을 얘기하면 대개들 자기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누구나 같이 이런 현상을 겪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것 같아 자꾸 걱정이 된다. 그로해서 생기는 일들도 참 여러 가지다. 자기들이 겪은 얘기들을 꺼내다 보면 모두 웃음을 금치 못하지만 참으로 슬픈 웃음이 아닐 수 없다. 늙는 것도 서럽다 하거늘 어이 기억력 감퇴나 치매까지 걱정해야 하는가. 귀중품도 깊이 잘 두면 탈이 난다. 어디다 숨겼는지 생각이 안 나니 그냥 눈에 띄게 허술히 두는 게 잘 두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 시작한 지도 십여 년 됐다. 그때만 해도 A4용지 두 장 가까이 쓴 글이 외워졌다. 조용히 산책을 하며 내가 쓴 글을 떠올리면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좍 밖으로 풀려 나왔다. 어떤 사안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게 그대로 다 머리에 입력이 되어 첫 줄부터 다시 꺼내 음미를 하며 수정할 부분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턴 이게 안 된다. 간혹 알던 단어나 맞춤법도 깜빡거리는 때가 있고 무슨 행사 때 낭송이라도 하려면 짧은 내 시도 꼭 적어서 읽어야 한다. 그래도 글 쓴다고 노트북 앞에 앉기만 하면 어수선하던 머리도 정리가 되는 걸 보면 신기하다. 늦게 시작했지만 글을 쓰라는 팔잔가 보다. 치매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써야겠다.

사람이 평생 질병 걱정하며 살다 나이 먹으면 또 치매란 걸 걱정해야 하니 일생을 질병 두려워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옮기는 폐렴에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인 것을 보더라도 인류가 하루라도 질병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암이나 치매 등 기존의 질병들과의 싸움도 힘겨운데 자꾸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 인간을 괴롭힌다. 치매는 모르겠지만 암은 거의 극복 단계에 와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내 주변에 암수술을 받고 오년 넘게 생존한 사람들이 많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암 판정 받았다하면 사형선고였다. 우리나라가 사형선고를 받은 중죄인들 사형집행은 안 하지만 요 암만큼은 자비라는 게 없었다. 철저하게 사형집행을 해서 한 집안을 완전히 망가트려 놓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암도 이제 완치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 세대는 폐결핵에 걸리면 지금의 암만큼이나 무서워했다. 결핵치료제가 없으니 빼빼 말라서 힘겨운 투병을 하다 거의 다 죽었다. 치료제도 없을뿐더러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으니 잘 먹어야 병도 이길 텐데 영양보충을 못해 병마와 싸우기가 더욱 힘들었다. 그때 결핵환자가 영양보충을 위해 한 걸 보면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먹는 게 고작이었다. 뱀을 잡아오면 한 마리에 얼마씩 돈을 주어 아이들은 뱀을 보기만 하면 잡아다 그 집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결핵은 극복이 되고 암이란 게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혔지만 이것도 이제 치료가 되고 있다. 암도 극복이 되고 있는데 이젠 신종코로나 같은 게 나타나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얼마 전에도 사스나 메르스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게 찾아와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런 것들도 결국엔 극복이 되겠지만 그때마다 또 못 보던 질병이 새로 나타나니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 질병과의 투쟁은 끝이 없을 것 같다.

암이 극복되고 있듯이 치매도 치료가 되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 치매가 오면 본인도 본인이지만 가족과 사회가 같이 힘들다. 누구나 곱게 늙다가 어느 날 곱게 죽으면 자식들이나 국가나 본인에게나 다 좋겠지만 그런 복을 타고나기란 힘든 일이다. 요양원, 요양병원엘 가보면 제 발로 걸을 때는 그래도 덜한데 치매가 오거나 노환이 깊어져서 거동이 힘들기 시작하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만물의 영장이 더없이 추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합창하는 건 제발 요양원 가지 않고 내 집에서 내 발로 걸어 다니다 죽게 해달라는 것이다. 죽음은 받아들일 테니 곱게 죽을 수나 있게 해달라는 절규, 이 절박한 외침마저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