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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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驚蟄)
  •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 승인 2020.03.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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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음력으로는 2월 중에, 양력으로는 3월 5일경이 된다.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 된다.

‘경칩’이라는 말은 ‘봄철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원래 계칩(啓蟄)으로 불렀으나 기원전 2세기 중국 전한의 6대 황제였던 경제(景帝)의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황제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서 쓰는 동양 전통에 따라 ‘계’자를 ‘놀랄 경(驚)’자로 바꾸어 ‘경칩’이라는 말로 변경되었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기원전 475~221)에 따르면 초후(初候)에는 복숭아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꾀꼬리가 짝을 찾아 울며, 말후(末候)에는 매가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활발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경칩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1444)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다.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 일에 개구리 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 오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건져먹기도 한다. 또,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한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한편, 경칩 날에 보리 싹의 성장을 보아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또한,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를 베어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중국에는 경칩에 백호가 먹을 것을 찾아 나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경칩 무렵에는 봄 천둥소리에 따라서 북 가죽을 고치기도 했다.

‘예기’ 월령에 ‘(음력) 2월에는 초목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핀다’고 했다. 그래서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나 갓 자란 풀이 상하지 않도록 불을 놓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북을 치거나 집 안팎에 연기를 피워 잠에서 깨어난 뱀이나 벌레들을 집 밖으로 내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나쁜 기운을 내쫓는다는 벽사(辟邪)의 풍습으로 발전했다.

만물이 생동하는 경칩, 젊은 남녀들은 은밀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 알을 서로 주고받고 나눠 먹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나가서 서로 보고만 서 있어도 열매가 맺힌다는 암, 수은행나무를 돌면서 연정을 키웠다고 한다. 경칩 날을 사랑의 날로 즐기던 조상님들의 훌륭한 멋도 맛도 알지 못한 체,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시끌법적 , 왁지지껄 둥둥 뛰면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나누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조상님이 보시면서 무어라 하실지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논에 들어가 쟁기 잡고 논갈이를 하는 권농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날이 경칩 후 첫 돼지날(亥日, 올해는 3월 9일)이었다. ‘정조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고…’라고 한 것처럼 경칩은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절기인 것이다. 장황한 경칩 이야기는 그만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혼잣소리나 좀 해보자.

우수ㆍ경칩에는 추위에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데 코로나 19에 얼어붙은 우리네 속은 언제나 풀릴까. 미몽을 일깨워줄 봄 천둥소리는 언제나 울릴까. 언제 북치고 연기 피워 내 속의 삿된 것들을 쫓아낼까. 개구리 알을 먹을까, 도롱뇽 알을 먹을까. 개구리 울음소리는 누워서 듣게 될까, 서서 듣게 될까. 은행 알은 또 누구와 주고받으며 마음을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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