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 개의 폐를 가지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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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 개의 폐를 가지고 있다면
  •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학과 교수
  • 승인 2020.03.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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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학과 교수
정일규 한남대학교 스포츠학과 교수

 

“세 개의 폐(Three Lungs)”는 2019년 초 피파(FIFA)에서 23인의 슈퍼히어로를 선정하면서 박지성에게 부여한 호칭이다. 경기장을 누비던 그의 경이로운 활동량과 지구력에 대한 명예로운 찬사이다. 그런데 실제로 폐가 하나 더 있다면 생리적으로 어떤 면에서 유리할까? 엉뚱하지만 생각을 한번 해보았다.


이에 대답은 ‘이점이 별로 없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답이겠지만 운동생리학의 측면에서는 세 개의 폐를 갖는다고 해서 경기력에 그다지 보탬을 주지는 못한다. 물론 폐를 하나 더 갖는다면 폐활량이 늘어날 수는 있다. 폐활량이란 최대로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최대로 내쉴 때의 공기량이라고 할 수 있다. 폐의 전체 용적이 증가하므로 폐활량도 어느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폐활량이 폐에 질환이 없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 간에 지구력이나 운동능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흔히 젊은 사람의 경우 더 체력적으로 우수한 사람이 더 큰 폐활량을 갖고 있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폐에 질환이 없는 젊은 사람이라면 폐활량은 그 사람의 체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은 박지성이 경기장에서 보였던 엄청난 활동량과 지구력이 사실 폐 기능과 별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폐를 통하여 더 많은 공기를 들여 마시더라도 그 공기 안에 포함된 산소를 체내로 받아들이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들여 마신 공기 중의 산소는 결국 폐포(허파꽈리) 안으로 들어와서 폐모세혈관 안을 흐르는 혈액으로 보내진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공기를 마셔도 폐에 흐르는 혈액이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릇에 아무리 많은 물을 부어도 그릇의 용량보다 더 많은 물을 담을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장이 펌핑하여 폐를 거쳐 나오는 동맥혈액은 이미 산소에 의해서 98% 정도 포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여기서 폐가 하나 더 있어서 더 많은 공기를 마신다고 한들 몸이 산소를 더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물속에 잠수하기 전에 잠수시간을 늘리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이 때 숨을 크게 심호흡한다고 해서 산소를 더 받아들일 수는 없다. 심호흡을 하는 이유는 산소를 더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혈액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어 물속에서 숨을 참는 시간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지성 선수의 지구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박지성 선수의 지구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장의 기능이다. 운동훈련에 의해 펌프의 용량과 기능이 발달한 심장을 스포츠심장이라고 하는데, 최대로 운동할 때 일 분 동안 품어내는 최대의 혈액량, 즉 최대심박출량이 증가한다. 산소를 싣고 달리는 혈액량과 순환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모세혈관의 수가 증가한다. 이 혈관의 총연장은 약 12만km로 지구를 두 바퀴 반 돌 정도의 길이이다. 특히 근육에 분포되어 있는 모세혈관이 증가한다. 이는 산소를 직접 공급하는 도로망이 잘 발달됨을 의미한다.


셋째, 근육세포 내에서 산소를 받아들이는 미오글로빈이라고 하는 물질이 증가한다. 이 물질이 많을수록 근육은 혈액으로부터 산소를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넷째, 역시 근육세포 내에 미토콘드리아라고 하는 소기관의 수와 크기가 증가한다. 이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세포 내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내젖산능력’이 높기 때문이다. 운동을 높은 강도로 수행할 때 젖산이라는 피로물질이 생성된다. 이 젖산이 높은 상태로 축적되더라도 이를 견디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내젖산능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쓰다 보니 생리적 측면이나 호흡 때문은 아니라도 물리적 측면에서 ‘세 개의 폐’가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몸 안에 폐가 세 개가 있으면 그만큼 몸의 밀도가 적어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스피드와 지구력이 다 함께 높아질 것도 같으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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