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 녹슨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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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게 녹슨 머리
  • 오희숙 수필가
  • 승인 2020.03.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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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숙 수필가
오희숙 수필가

황당했다. 지하철 카드가 정지되었단다. 한번 두 번 다른 칸으로 옮겨서 해봐도 소용이 없다. 어제 저녁에도 통과했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요즘엔 직원도 없다. 모두 기계로 하고 있으니 당황해서 앞이 캄캄했다. 기계 앞에서 방방 뛰며 누가 좀 도와 달라고 하니 다들 바쁜 아침 출근시간이라 그냥 갔다. 차 시간 놓치면 안 되는데 마음이 더 바빴다. 몇 번을 도와 달라니 오십대 아저씨가 왔다. “우대로 하셔야 돼지요.” 아니요 그냥 표만 뽑아주세요. “나도 바쁜데 어르신 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는데 어디서 직원이 왔다. 표를 사고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 카드가 왜 정지되었나 알 수 있어요?” 하니 “아이고 진작 보여주셨어야죠.” 직원이 카드를 대도 안 되었다. “여기로 나가세요.” 하며 옆 창구로 나가게 했다. 나를 도와주려던 아저씨는 한 대를 놓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못 타셨네요. 고마웠어요. 죄송하고요. 인사를 하고 다음 차를 탔다. 영등포에서 내리니 개찰을 안 해서 못나간단다. 참 요즘 기계 똑똑하다. 할 수 없이 옆으로 나와서 이 표를 반납을 해야되는데 받지를 않는다.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안내하는 곳에 주었더니 “여기서는 오백 원을 못 받으니 저기 가서 하세요.” 기계 가서 하란다 오백 원 필요 없다고 하며 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교통카드로 하면 되는데 왜 표를 사려고 했는지 더 기가 막혔다. 이렇게 안돌아가는 머리 가지고 어쩐단 말이냐.


요즘 이것뿐이 아니었다. 밖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집에 벗어놓은 코트주머니에서 나왔다. 복지관에서 식권을 사서 주머니에 넣은 것 같은 데 없다. 가방을 샅샅이 뒤지며 찾았는데 없었다. 전에는 다시 사면 되었지만, 지금은 한사람이 한 장 밖에 못산다. 그냥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지갑을 뒤졌더니 얌전히 접어서 넣어 있었다. 어이없다. 수업 끝나면 식사하러 가야하는데 무엇하러 지갑에 넣었을까 넣었으면 왜 생각이 안 났을까? 무슨 습관으로 은연중에 넣었을까. 녹슨 기억력이 한심스럽다. 나도 내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내 생각이 백 프로가 아니라 거짓말이 많다. 싱크대 앞에서 냉장고 문 열고 드려다 보면 왜 왔나 모른다. 이런 것은 다반사다. 기차에 오면서 카드를 자세히 봤다. 서울특별시 시니어패스(어르신 교통카드)였다. 내가 서울시에서 옥천으로 이사 온 지가 일 년 구 개월이 되었다. 그런데 몇 번 서울에 가면 그냥 사용하면 되었다. 어차피 무료니까 썼는데 2015년 1월 15일로 서울 시민에서 퇴출되었다. 이제 기계 앞에서 무임승차하는 것 차분히 배워야겠다. 건망증으로 끝나면 되는데 치매는 아닐까? 걱정이 된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백세시대라 하는데 건강하게 백세여야지 누워서나 제정신 아니게 오래 살면 무엇하겠나 싶다.


어제 아침을 먹으며 손녀딸에게 할머니 꿈이 있다. 전에는 꿈이 없었어. 그래서 할머니는 하나님께 75까지만 살게 해 주세요 했다 한 삼 년 동안 시골에서 흙장난하고 놀다가 조금 더 살으셨으면 좋을 텐데 할 때 간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꿈이 생겼어. 할머니 이름으로 책 한권 나오는 꿈. 참 좋지. 너희들도 할머니 위해서 기도해주렴 했는데 한 시간도 안 돼서 황당하게 처신도 못하는 한심스런 노인으로 변했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 있었는데 하면 된다고 마음도 다짐했는데 한 살 더 먹었다고 그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크는 아이들이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게 큰다지만 늙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제 점심 끝나고 군서 장령산으로 드라이브 하면서 코에 바람 넣을 때는 참 상쾌했다. 활짝 갠 하늘을 보면서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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