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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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의 진화
  • 박은주 시인
  • 승인 2020.03.2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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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인
박은주 시인

 

요즘 사람들은 문자 대신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같이 스마트폰 메신저를 많이 이용한다. 메신저를 쓰다보면 일일이 타이핑하는 것이 불편하고 속도도 느려서 저장된 사진이나 이모티콘을 사용하게 된다. 세대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다른데 중장년층 이상은 주로 사진을 보낸다. 잠언 같은 문구가 들어간 사진이나 풍경사진이 주로 오가면 어른들의 대화방이다. 나이가 어려질수록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모티콘 패키지를 구입해서 사용한다. 이모티콘 시장도 규모가 커지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캐릭터의 장르도 다양하고 독특한 표정도 많아졌다. 기본 이모티콘이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이모티콘과 ‘ㅋㅋ’ 또는 ‘ㅇㅇ’ 등의 모음으로 도배되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의 대화방이다.


나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기만 하는 이른바 눈팅족이어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데 알림소리가 싫어 모든 알림을 무음으로 설정해놓으니 메시지를 열어볼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이다. 어쩌다 메시지를 보낼 때면 잠시 고민한다. 이모티콘을 안 쓰자니 감정과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 같고 쓰자니 기분에 딱 맞는 그림이 없는 것이다. 문자는 읽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단점이 있다. 읽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평범한 문장도 비꼬는 것처럼 읽히고 기분이 좋으면 똑같은 문장이 풍자가 섞인 유머로 읽히기에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모티콘 창을 열면 만들어진 여러 개의 표정에 내 감정과 상태를 맞추는 선택의 고민이 시작된다.


메시지를 쓰는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여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면 이모티콘 창에서 거기 맞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딱 맞는 것이 없으니 비슷한 것을 하나 고른다. 그것을 받는 상대는 이모티콘을 통해 나를 본다. 내 상태가 어떠한지 어렴풋이 전달했으니 거기에 적당히 반응하는 이모티콘 하나가 온다. 내가 직접 표현하지 않고 이모티콘이 나를 대신한다. 상대방이 보낸 것도 상대방의 정확한 감정인지 알 수 없지만 의사소통은 되었다. 내 감정을 내가 표현하거나 직접 대화로 느끼지 않고 대체 수단을 통해 느끼고 받아들인다. 표현이 서툰 경우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대화방에 있는 회원들이 서로 이모티콘만 보낸 것을 넘겨보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아해질 때가 있다.


감성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요즘 텔레비전에서 유행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그렇다. 나는 편하게 앉아서 낚시도 하고 캠핑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관광지부터 오지와 정글까지 안 가는 곳이 없다. 채널만 돌리면 하숙도 하고 푸드 트럭이나 이발소도 운영한다. 돈 안 들이고 전국 각지를 돌며 여행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볼 때는 재미도 있고 유익한 정보도 얻는데 실제로 나는 아무것도 경험한 것이 없다. 배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벌고 광고도 찍는데 나는 TV 수신료를 내는구나 생각한 적 있다. 내가 처한 현실이 씁쓸해서 여행 예능은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요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연예인들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폭풍흡입 하지만 나는 침만 삼키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면 라면을 끓여먹는다. 누군가 자신의 SNS에 올린 음식 사진을 보며 맛집이라 체크해놓고 나중에 가봐야지 결심하지만 여유가 없어 가지 못한다. 그래도 정보를 알고 평가를 읽은 것으로 평점을 말할 수 있다. 간접 경험도 경험이니까.


보고 듣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맛과 냄새, 피부에 닿는 느낌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도 사실 연출에 의해 편집된 화면이니 실제와 다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에서 하나를 골라 오랜만의 휴식을 취하려 하지만 어깨가 뻐근해지면 나의 현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꼭 맞지 않아도 적당한 이모티콘을 고르고 프로그램도 고르면서 왠지 세상을 알 것 같은 느낌에 젖다 보면 그곳에는 정작 내가 없다는 것을 모르게 된다. 정해진 표정 중에서 하나를 골라 내 감정을 거기 맞추고 더 이상 표현하지 않으므로 나는 만들어진 세계 뒤편으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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