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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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
  •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 승인 2020.04.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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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곽봉호 옥천군의회 의원

 

영조(英祖)는 재위 40여 년 동안에 금주령을 내릴 정도로 백성들의 살림이 팍팍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조선의 제22대 정조(正祖)는 어머니 회갑연에서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말한다.


이 성어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第2 남유가어지십(南有嘉魚之什) 잠로(湛露)에 나오는 말로 천자(天子)가 제후(諸侯)들에게 연회를 베풀었을 때 부른 노래라고도 하며, 정조(正祖)가 즐겨하던 건배사라고도 하는데, 그 내용의 1장은 다음과 같다.


湛湛露斯(쟙쟙로사) 촉촉이 내린 이슬이 옷깃을 적시는 새벽녘이 되었는가,
匪陽不晞(비양불희) 햇빛이 나지 아니하면 이슬은 마르지 아니하나니,
厭厭夜飮(염염야음) 밤이 깊어갈수록 편안도 깊어져 잔치는 절정으로 치닫고,
不醉無歸(불취무귀) 이 어찌 취하지 아니하고 홀로 돌아갈 수 있으리.


때는 1796년(정조20년) 4월11일 2경. 성균관 유생 이정용이 술에 취해 궁궐 담장 아래에서 잠을 자다 붙잡혔다.


임금이 사는 궁궐 담벼락을 베개 삼아 큰 대자로 누워 잠을 잤으니 중죄라면 중죄다.


그러나 정조는 죄를 묻는 대신, “조정 관료와 선비들은 주량이 너무 적어서 술에 취하는 풍류를 모른다. 이 유생은 술 마시는 멋을 알고 있으니 매우 가상하다. 술값으로 쌀 1포를 지급하라.”고 명한다.


술에 약한 정약용에겐 필통에 술을 부어 마시게 했을 정도로 짓궂었던 정조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염염야음 불취무귀(厭厭夜飮 不醉無歸), 흐뭇한 술자리 밤에 벌어졌으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며 술을 권했다. 불취무귀는 현재까지 건배사로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구절이다.


군자의 음주는 공자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공자는 술 마시고 흥청거리는 모습에 대해, “백날을 수고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는 오직 주량은 한정이 없으시되 정신이 혼란스러운 데는 이르지 않으셨다(唯酒無量 不及亂)고 공자의 음주법을 전한다.


술꾼들은 술 취하는 단계로 네 단계를 꼽는다. 긴장된 입이 풀리는 해구(解口), 미운 것도 예뻐 보이는 해색(解色), 분통과 원한이 풀리는 해원(解怨), 인사불성이 되는 해망(解妄)이 그 것이다.
고상하고 멋진 건배사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술 향기는 백리까지 퍼져가고(酒香百里), 꽃향기는 천리까지 퍼져가고(花香千里), 인품의 향기는 만리까지 퍼져간다(人香萬里).


차가운 술은 위를 상하게 하고(冷酒傷胃), 독한 술은 간을 상하게 하고(毒酒傷肝), 술이 없으면 마음을 상하게 한다(無酒傷心).


채근담에 ‘꽃은 반쯤 핀 것이 좋고(半開), 술도 반만 취한 것(半醉)이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꽃이 활짝 펴 버리면 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내민 꽃봉오리가 아름답지 않던가. 술 역시 얼큰할 정도로 마시며 흥얼흥얼 콧노래라도 부르며 대문을 들어서는 가장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정조 임금은 성균관 제술시험에 합격한 유생들과 함께한 주연에서 각자 양껏 마시라며 시경의 구절을 인용했다.


흐뭇한 술자리 밤에 벌어졌으니,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못하리라(厭厭夜飮 不醉無歸). 이 구절에서 따온 불취무귀로 건배사를 했다는 것이다.


예의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지난 날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는 것이 예가 아니요, 여자가 글을 가까이 하는 것도 예가 아니었고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여자가 남자를 이기려 달려드는 것도 예가 아니었다.


지금 세상에서 어디 가서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성차별이라고 비난을 면치 못하고 몰매를 맞을 것이다.


동트면 일하고 해가 저물면 일을 마쳐야 했던 농경문화와 하루 온종일 기계를 가동해야 하는 산업사회의 문화와의 차이는 예의 차이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예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예의 본질은 시대의 변화를 초월해 존재한다. 정조의 불취무귀(불취무귀) 정신을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 임금의 권위를 내려놓음으로써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자 하는 어진 임금의 마음은 그 자체로 신분에 매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위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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