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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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산
  • 김연안 한국과학기술원 이학박사 수필가
  • 승인 2020.05.2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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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안한국과학기술원 이학박사수필가
김연안한국과학기술원 이학박사수필가

 

푸른 봄빛이 가슴속 깊숙이 스며드는 오월, 오일장이 서면 소도시의 기차역은 인근 농촌에서 몰려든 인파로 시끌벅적하다. 수건을 머리에 두른 시골 아낙네들, 보따리장수들의 수다와 담배 연기로 출렁인다. 낡은 풍경화 한 장을 펼쳐놓고 산을 휘감고 달려온 철로를 바라본다.


젊어서부터 일찍이 타국에 직장을 가졌던 아버지, 낯선 땅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삼 남매를 기르며 오랜 세월을 지내셨다. 갑자기 찾아온 광복에 서둘러 그리운 조국의 품에 안겼지만, 여러 차례 사기극에 휘말려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울화병에 시든 몸으로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셨다.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는 늘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냈고, 아버지가 어린 나를 돌보았다.


은발 상고머리에 회색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입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울긋불긋 옷차림한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낯선 애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받았다. 다음날 철없던 나는 생떼를 써서 혼자 학교에 갔다. 터덜터덜 돌아오던 나를 양지바른 골목 담벼락 아래서 기다리던 아버지, 바라보는 눈빛이 그윽했다. 골목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는 나를 담벼락의 그늘 밑에서 지켜보는 눈빛에 은근히 등허리가 시큰거렸다. 환갑이 눈앞인 날 얻은 늦둥이. 얼마나 가슴이 무거웠을까.


오랜 지병으로 해수병을 앓았던 아버지는 밤마다 숨이 가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쿨럭쿨럭 기침 소리를 내뱉었다. 가족 모두가 피하는 아버지의 방, 늘 한쪽 구석은 아늑한 내 잠자리였다.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에 깨어난 나는 졸린 눈을 겨우 뜨고 일어나 앉아, 작은 주먹으로 아버지의 어깨와 등을 콕콕 두드렸다. 그 무렵 잠이 부족한 나는 낮에 늘 나른했지만, 언제나 마음속은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방과 후엔 동무들과 함께 맑은 두 줄기 냇물이 감돌아 흐르는 시내를 휩쓸고 돌아다녔다.


봄엔 들판에 피어난 자운영에 붉게 물들고, 푸른 잎 사이 가지 끝에 흰 꽃이 고개를 내민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나비와 술래잡기를 했다. 가끔 가까운 야산에 올라 버찌에 입술을 검게 물들이기도 했다. 한여름엔 밑바닥이 훤히 보이는 물속에 뛰어들어, 모래밭을 더듬더듬 걸으며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모래무지를 잡았다. 그림에서만 보았던 미꾸라지, 메기, 붕어, 잉어, 뱀장어, 자라, 참게 등을 손으로 잡고 만졌을 때, 신비하게 느꼈던 자연의 숨결. 지금도 내 가슴 깊이 삶의 동력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나는 매우 자유롭게 지냈으며, 낙관적 인생관이 뿌리내렸고, 지금도 내 삶 속엔 낭만과 여유가 감돌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을 잃은 후, 구불구불한 세상살이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땅도, 그리움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남겨준 재산은 없지만, 서릿발 지우며 마르지 않는 사랑으로 가냘픈 내 몸에서 튼튼한 줄기가 솟아나게 해 준 아버지.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 방으로 불러들여 잘못한 점을 지적하고 내 답변을 들은 다음, 목침 위에 올라선 내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렸다. 감정의 절제에 의한 차분한 체벌. 이 시기에 바른 내 마음의 바탕이 거의 이루어진 것 같다.


홀로 적적한 날엔 양반다리를 틀고 앉아 자신의 다리 위에 나를 앉혀 놓고, 선진사회의 생활상, 올바른 삶의 길, 사람 사이 신뢰의 중요성 등, 많은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셨다. 이런 시간을 보내며 나도 모르게 내면에 켜켜이 쌓인 개념들이 지금까지 내 삶을 탄탄하게 이끌어 왔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가끔 지인들과 바둑을 두었는데, 옆에서 눈요기로 배웠던 바둑이 유년기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덕분에 나는 동네 노인들로부터 남달리 귀여움과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다. 지금도 가끔 지인들부터 바둑 모임에 초대를 받고 있다. 깊이 생각해 보니, 이 밖에도 남보다 약간 잘할 수 있어 삶에 도움이 되었던 것, 대부분이 유년 시절 아버지의 그늘에서 배우고 익혔던 것들이다.


많은 무형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아버지와 같은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또한, 그윽한 내 삶의 쉼터, 푸른 갈대밭과 광활한 갯벌이 딸린 서울보다 더 넓은 땅, 그곳에 은은하게 펼쳐진 추억의 꽃바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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