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선사문화와 안터마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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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선사문화와 안터마을(2)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5.2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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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지난 호에 이어...


△옥천의 신석기문화
옥천지역의 신석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편이다. 비록 조사된 유적은 빈약한 편이나 문화내용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천리 집자리 유적이다. 대천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경부고속철도건설구간에 위치하며 신석기시대 집자리 1기가 발굴되었다. 집자리는 장방형의 평면형태로 4주식 기둥배치를 하고, 돌출된 출입시설, 구덩형 불땐자리, 내부공간의 분할양상을 보이는 특징을 지닌 집자리로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충청내륙 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집자리로서 이를 “대천리식 집자리”로 이름하였다. 이와 동일한 구조를 띠고 있는 집자리가 대전 관평동유적, 청주 쌍청리유적, 보령 관창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대천리 집의 규모( 950×510×35cm)는 약 48.5㎡(약 14.7평)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이 집자리는 기둥구멍의 배치관계와 불땐자리 및 구덩이의 위치로 볼 때 생활공간과 부속공간의 두개 공간으로 분할되는 특징을 지니며, 집안 동쪽 부분은 난방 및 취사 등 생활공간으로 활용하였고, 서쪽 부분은 부속공간으로서 곡물을 가공하거나 갈무리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집자리 안에서 생활공간과 부속공간의 면적 비율은 7:3 정도이다. 이처럼 대천리 집자리는 내부공간을 분할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발전된 집의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을 복원한 결과 벽체와 지붕이 서로 분리된 맞배지붕 형태의 구조로 참나무과의 상수리나무를 이용하여 지었고, 불탄 갈대류가 발견되어 지붕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원전 3,500~3,300년 전의 대천리 집자리에서는 쌀, 보리, 밀, 조, 기장 등 5가지 종류의 탄화된 곡물이 출토하여 대천리에 살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쌀농사와 함께 잡곡 농사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당시 신석기 사회에서 농경의 중요성이 높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출토유물에서도 짐승사냥이나 물고기잡이 도구가 출토되지 않은 반면 뒤지개와 같은 농경도구가 적지 않게 발굴된 점도 이를 잘 뒷받침하여 준다.


△옥천의 청동기문화
옥천의 청동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는 학술 목적의 지표조사를 통하여 조사된 고인돌· 선돌 유적이 대부분이다. 2000년대 후반에 발굴조사로 집자리와 석곽묘가 조사되었으나 가풍리유적 1곳 뿐이어서 옥천지역의 청동기문화를 가늠하기에는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유적을 생활·매장유적(집자리·석곽묘), 고인돌유적, 선돌유적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때 첫째가 생활·매장문화다.


옥천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은 옥천읍 가풍리유적 뿐이며, 이곳에서 집자리 1기와 석곽묘 4기가 조사되었다.


가풍리 집자리는 내부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와 구덩이 내부에 2개의 기둥구멍이 배치된 송국리형 집자리이며, 평면형태는 말각방형(415×280(현)×54(현)cm)으로 추정되나 훼손되어 전체 모습은 알기 어렵다. 집자리 내부시설로는 중앙부에 무시설식 불 땐 자리가 있고 바닥면 전면에 걸쳐 숯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집자리 형태는 송국리형 집자리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형태에 해당된다. 유물은 민무늬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이 집자리의 조성시기는 연대측정값과 집자리의 평면형태 및 구조적인 특징으로 볼 때 기원전 800년 경의 청동기 전기의 역삼동· 흔암리 유형에서 중기의 송국리 유형으로 변화되는 과도기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매장시설로서 석곽묘는 4기가 조사되었는데, 크기는 길이 109~190cm, 너비 32~85cm, 깊이 31~75cm이다. 내부시설로 주검받침대가 있는 것(1,2호)과 없는 것(3,4호)이 있으며, 유물은 붉은간토기 발과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가풍리 석곽묘는 호서지방 석곽묘의 구조와 축조방법과 비교하여 볼 때 축조 시기는 4기가 약간의 시기차를 보이고는 있으나 대체로 청동기시대 중기의 송국리형 문화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조사예가 극히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입지, 평면형태, 구조, 출토유물 등 제반 양상은 호서지역 중기 청동기문화의 범주에 포함되며, 이 지역만의 특이한 점은 찾아볼 수 없다.


옥천지역 청동기시대의 주거와 매장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는 가풍리유적 뿐이어서 구체적인 문화 성격 규명은 어려운 실정이며, 앞으로 이와 관련한 자료가 축적되기를 기대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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