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모님 싸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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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모님 싸모님
  • 안효숙 수필가
  • 승인 2020.06.1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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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숙 수필가
안효숙 수필가

키에 비해 유난히 큰 구두를 신고 다닌다 싶은 김 파는 아저씨. 장터마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와 상냔하게 인사를 하신다. 그리고는 “싸모님, 많이 파셨습니까?” 한다.
그 어감이 “싸모님 춤 한 번 추실까요?” 하는 것처럼 느끼하다.(죄송!) “사모님은 무슨. 아줌마라고 부르세요.” 하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싸모님이 좋지요.” 하던 김 파는 아저씨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누가 여름에 김을 살까. 봉투에서 내놓으면 금방 습기가 차서 고소한 맛이 다 없어지고 눅눅해지는 것을......


그러던 어느날. 씩씩하게 “싸모님! 그동안 장사 잘 하셨습니까?” 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김 파는 아저씨였다. 한 손에는 구두약을, 다른 한 손에는 구둣솔을 들고 나타나서는 양복 차림의 아저씨가 지나가면 놓치지 않고 “과장님 구두 닦으세요” 하고 달려들어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놓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나 과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뿌리치고 발 안 잡히려고 폴짝뛰던 아저씨도 과장님이라는 소리에 “참. 내원. 흠흠.” 하시고는 “그거 얼마요?” 의젓하게 무게잡고 산다. 왜냐하면, 과장님이라니까. 히히.


농약 사러 온 듯 수더분한 아저씨가 지나가면 “이장님, 멋쟁이 이장님, 구두 닦으세요.” 하고 또 바지자락을 잡으면 손까지 휘두르며 비껴가지만, 기어이 구둣솔이 흙 묻은 구두 위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면 금세 번쩍번쩍 광이 나고 이장님이라 불리운 아저씨는 “허참, 구두약 하나 주오, 신통하긴 하네.” 하고 점잖게 말씀하신다.


나는 그 광경을 안 보는 척하면서 몰래몰래 볼 거 다 본다. 똑바로 쳐다보면 아저씨가 혹시 무안해질까봐, 아니 사실은 아저씨가 민망해하는 걸 보는 내가 더 무안해질 것 같아서이다. 어쩜 저리도 반죽이 좋은지 신기하다.


여름이 다 갈 무렵 구두약을 팔던 아저씨는 부채를 가지고 나타났다. 부채는 한 개에 천원이다. 올여름 더위는 손에 꼽을 몇 날뿐이었으므로 아저씨 부채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 옆에서 가방 파는 언니가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데 그 언니가 자꾸만 “오늘 부채 만 원어치도 못 팔았을 텐데 밥 먹는 것도 미안하다. 저 아저씨는 오늘 밥값도 못했을 텐데. 우리만 먹어서 어떡한다냐.” 하는데 내 등도 함께 따갑고 미안해진다.


도시락 뚜껑을 덮는데 등이 시원하다. 그 아저씨 언제 왔는지 부채로 가방 언니와 내 등을 부쳐주고 있다. “싸모님,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하는데 나는 아저씨의 큰 신발을 보고 웃음이 쿡쿡 나온다. 가방 언니가 “거 좀 장사 잘되는 거 해보세요. 맨날 안되는 거만 하지 말고...... 주위 사람까지 심란하네.” 하니까 아저씨는 “나는 안되는 거 해도 돼요. 워낙 열심히 하니까. 우리 싸모님들이 잘되는 장사를 해야지요. 안그려요? 덥고 힘드니까 이 부채도 하나 사시고, 더우니까 부치면서 장사도 해야지.” 하며 하나씩 손에 쥐어 준다.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부채를 하나씩 사게 되었는데 “싸모님!” 그 소리에 홀려서 산 것이 틀림없다.


부채를 손에 들고 보니 여름이 다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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