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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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 쓰는 글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0.06.1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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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탄 이흥주수필가
동탄 이흥주수필가

짙게 내리깔린 하늘에서 얌전한 모습으로 비가 쉴 새 없이 내린다. 며칠 전만 해도 한여름이 무색하게 햇볕은 달은 번철처럼 뜨겁기만 했다. 실눈을 떠야 할 너무도 밝은 햇볕에 늘어진 곡식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역시 하늘이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이른 장마가 오지 않았나할 정도로 장마기분이다.


매일 바쁘게 사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비도 오는데 열일 제쳐두고 여유 좀 부려보자는 마음이 든다. 해서 노트북 앞에 편안하게 앉아 자판을 두드려보고 있다. 조금 쓰다 덮어 놓고 틈만 있으면 거르지 않고 찾아가는 비 오는 ‘산책길’도 걸어보며 마냥 사색에 젖어보고 싶다. 모처럼 빈둥대는 하루를 만들어야겠다. 항상 바쁜척 하며 나대지만 시간이 많은 편이긴 한데 올 봄은 정말 바쁘게 일하고 힘들게 보냈다.


비 오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일에 시달려 마음과 몸이 함께 고달플 땐 비 좀 왔으면 하고 기다려 질 때가 있다. 공(空)치는 게 공치는 게 아니다. 적당한 쉼도 필요하다. 휴식엔 글 쓰는 일이 최고다. 글을 쓰려면 머리가 복잡해지는가? 즐겨서 하는 일엔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다만 청탁 받은 원고를 보내야할 날짜에 맞춰 쓰려면 막히고 생각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긴 하다. 이런 땐 임기응변으로 글을 만드는 재주도 있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글 쓰는 게 직업이 아니니 그렇게까지 간다는 건 어렵다. 감이 와서 어느 것에도 매임 없이 쓰는 글은 즐겁다.

지금도 이 글이 아침에 비 오는 잿빛 하늘이 던진 멋진 분위기로 제목을 달고 두드리는 중이다. 옛날처럼 얼음 위 미끄럼 타듯 잘 나가진 않지만 이 시간이 즐겁다.


하필 인생후반기에 글을 쓰는 기회가 왔다는 건 행운이다. 이게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취미로라도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앉았다는 것이 행운이지 않은가. 내가 쓴 글이 작게나마 다른 분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겠다. 그냥 흘러 지나갈 쓸모도 없는 순간을 포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즐겁다. 목수가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꿰어 맞춰 멎진 집을 완성해 가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글을 읽기만 할 땐 신문을 보던지 책을 읽던지 그걸 쓴 사람들이 하늘같이 보였다. 더러 써 본다고 긁적여 봤지만 역시나 안 됐다. 한데 그게 나에게 왔다. 지금도 잘 쓰지 못하고 헤매기만 하지만 이렇게라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고맙기만 하다. 글을 쓰려면 한글을 제대로 해야 한다. 배운 것도 없이 한글이, 한글 맞춤법이 쉬웠으니 다행이었다. 글을 쓰려면 최소한 우리 글 한글만큼은 제대로 알고 시작해야 한다. 이게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한데 쉽다고 생각하던 우리글 우리말도 어려워지고 있다. 사실 원래도 국어 아는 게 반쪽이었지만 그나마도 세월이 흐르며 어려워지고 있으니 고민이다. 어느 날 이 좋아하는 글마저도 쓰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기막힐 것 같다. 인생이야 백년을 살아도 갈 때는 짧다고 느낄 테지만 글을 쓰는 것도 인생의 막이 내리기 전에 문을 닫아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그 문이 닫히기 전에 열심히 해보아야겠다.


보람 있는 일이란 자기도 즐기며 남에게도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일, 많이 배우는 일, 가능한 많이 갖는 일이 개인에겐 보람 있는 일이 되겠지만 남에게까지 즐거움을 주진 않는다. 글은 만들면 남에게도 보여주는 일이고 잘 만든 것이라면 감동을 주니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남에게도 도움을 주고 보람 있는 일이 된다. 공장에서 물건을 열심히 잘 만들면 쓰는 사람이 만족감을 느끼고 좋아할 테니 보람 있는 일이다. 농사꾼이 농사 잘 지어 고품질의 농산물을 내 놓으면 보람 있는 일이다. 시내버스 기사가 운전을 안전하게 잘 해서 손님을 편안하게 모신다면 보람 있게 일을 하는 것이다.


노후에 글 쓰는 일이 남에게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줬다면 금상첨화겠다. 나 좋아하는 일하며 한사람에게라도 공감을 일으켰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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