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마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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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마음소리
  • 손수자 수필가
  • 승인 2020.09.0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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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자 수필가
손수자 수필가

 

남편의 직장 은퇴를 앞두고 막연하게 전원 주택지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머릿속에 밑그림을 빽빽하게 그리고는 같은 그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집 앞에 맑은 물이 졸졸거리고, 뒷산에는 고향 집처럼 금강소나무가 둘러쳐 있어야 한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답답한 가슴을 수평선까지 펼치면 가슴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대겠지. 작은 포구에는 생선들이 펄떡거리고, 의료·문화시설까지 쉬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면 금상첨화일 테지.’ 무슨 바람이 그리도 많았던지.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꿈꾸던 전원생활의 밑그림과 많이 닮은 곳에 오게 되었다. 수도꼭지만 틀면 지하수 물이 콸콸 쏟아진다. 집에서 13km쯤 거리에 푸른 바다가 있고, 작은 포구도 있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샘물이 모여 흐르는 양양 남대천 상류 산골짜기 1급수에 버들치, 산천어 등이 노닌다. 계곡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쉬지 않고 조잘거린다. 그 소리가 정겹다. 물 부자가 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물 부자가 되고 싶었다. 물 가난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생활용수는 이웃 큰댁 마당가에 있는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렸다. 어머니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아버지는 물지게로 물을 길어 부엌에 있는 커다란 물독을 채웠다. 빨래는 논 가 우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했다. 추운 날에도 그렇게 했다. 큰 빨래는 커다란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먼 곳까지 걸어가서 도랑물에 빨래했다. 그곳에 가면 넓적한 돌 위에 빨랫감을 올려놓고 빨랫방망이로 텅텅 두들겨 빨래할 수 있었다. 빨랫방망이 소리에 가슴이 후련했다. 그때 도랑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요즘은 세탁기 돌리는 일도 귀찮을 때가 있고, 수돗물도 못 미더워 생수를 돈 주고 사 마시니 격세지감이다.

때때로 집 앞 계곡물이 빨래하러 오라고 유혹 한다. 넓적한 돌 위에 빨랫감을 올려놓고 방망이로 펑펑 두들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아니 될 일이다. 물이 하도 맑아서 발 담그기도 민망한데 빨래를 하다니. 청정계곡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감이 양심을 바로 세운다.

물소리에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계곡 물소리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내 기분을 맞추어 준다. 내 마음이 밝으면 물소리가 명랑하고, 우울할 땐 낮은 소리로 다독인다. 내 콧노래가 나오면 졸졸졸 함께 부른다.

나도 물소리에 응답한다. 물이 자기가 소중하냐면 엄지 척 해주고, 나더러 물 흐르듯이 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어오면 배워서 따르겠노라 한다.

우리 집 입구에 그 증표를 세웠다. 커다란 돌에 새겨진 물소리 마음 소리!’ 물소리에 마음 씻고 귀 기울여 보려는 것이다. 마음의 소리, 청정한 그 소리가 들릴 때까지.*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世上)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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