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인 이인화(82) 씨는 대전에서 자라 서울에서 직장활동을 한 그야말로 ‘도시 사람’이었다.
대전 유성에서 대흥동의 학교까지 10km가 넘는 길을 매일 걸어 다녔을 정도로 배움에 열정적이었던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교사가 됐고 첫 발령 후 대전에서 지냈던 몇 개월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직 생활을 서울에서 했다.
그렇게 40년 동안 교육계에 몸을 담다가 은퇴하고 나니 일하랴, 살림하랴 너무 바빠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살아났다. 고향인 유성에 가려고 집을 알아보는데 40년에 비해 땅값은 무지막지하게 치솟아 있었고 아들은 갑자기 ‘옥천에 개척 교회를 세우겠다’ 선언했다. 그렇게 연속된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 따라 이 씨는 옥천군 안내면에 터를 잡게 됐다.
이 씨는 “옥천은 공기가 참 좋다”며 “90년대 후반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학교에서 몇 년간 근무했는데 먼지가 너무 많아 낮에는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고 밤에도 별을 본 기억이 없다”고 토로했다.
공기가 좋으니 농작물도 쑥쑥 자란다. 이 씨는 농사짓는 재미에 빠져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텃밭을 가꾸러 나간다. 텃밭에 고추, 호박, 파 등을 기르고 있는 그녀는 “수확물은 둘째치고 하루하루 자라나는 줄기와 잎을 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고즈넉한 집과 순수하고 따스한 마을 사람들 덕분에 이 씨의 얼굴엔 항상 미소만이 가득하다. 가끔씩 이씨가 서울의 병원에 다녀오면 그 소식을 들은 이웃들은 십시일반으로 이 씨의 집을 찾아 주머니에서 쌈짓돈을 꺼내 쥐여주곤 한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아프지 말라’는 당부와 ‘건강하라’는 소망이 가득 깃든 쌈짓돈에 이씨가 받은 감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듯 귀촌 후 옥천의 자연환경과 인심에 200% 만족하는 이 씨. 성공적인 귀촌 생활을 누리고 있는 ‘귀촌 선배’로서 귀농,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이 씨는 귀농 희망자에게 “귀농을 결정하기 전 사전에 농지와 택지에 대한 충분한 답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텃밭이야 비료 때를 놓치거나 열매를 솎아줄 시기가 지나도 그냥 조금 덜 자라고 덜 맛있는 작물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농사는 상상 이상의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이 씨는 농사에 드는 노동력과 시간을 설명하며 “농사를 한번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이 농사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귀농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체험을 먼저 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또한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에겐 “마을 어르신들은 조그마한 관심에도 쉽게 마음을 연다. 먼저 다가가면 계산 없이 많은 것을 돌려주실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더해 “시골은 법 없이 사는 곳”이라며 “마을 원주민들이 형성해놓은 생활 풍토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원래 가고 싶어했던 고향은 아니지만 옥천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옥천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나타낸 이인화씨의 귀촌 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