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과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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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과 졸업식
  • 강병철수필가
  • 승인 2020.10.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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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나라의 어린이, 앞으로 6년 동안 친하게 지내길 바란다. 지금부터 반 편성 이름을 부를 테니 부르는 대로 나오길 바란다. 1반 김봉구, 류성근, 이상국, 성군석……여기까지가 남학생이고.”

그 다음 여학생 반을 부를 차례다.

김영희, 이현숙, 류석화, 이순이, 이순이.......! 이순이? 없어? ! 이순이.”

이상하다. 여기서 왜 순이를 부르지?’

순임이 혼자 갸우뚱하며 그냥 지나갔을 뿐이다. 순이는 성안벌 옴팡집 사는 한 살 더 먹은 여자 애 이름이다. 아무튼 신입생 모두의 이름이 나올 때까지 순임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호명된 입학생 모두 자기네 반으로 가는데 순임이 혼자만 달랑 남게 되었다. 꽃샘눈이 희끗희끗 내리는 중이었다. 재건복 입은 코주부 교감님이 다가오더니.

왜 혼자 남았니?”

이름을 부르지 않…….”

눈시울이 먼저 뎅그렁뎅그렁 젖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름이 뭐냐?”

……순임인디유.”

교감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학 서류를 한참동안 들척이더니.

……혹시 느이 동네에 이순이라고 있니? 아까 빠진 이름 그 이순이랑 이름이 비슷하고.”

순임이가 고개를 끄떡거린다. 그랬다. 한 살 많고 아버지가 중풍으로 아파서 아들, 딸들 모두 아예 취학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그런 집이 있었다. 8남매 모두 열 살 안팎에 선머슴이나, 식모. 애보개로 보내는 집이다. ‘얼레꼴레리 앞으로도 이순이 거꾸로 뒤집어도 이순이그렇게 놀린 다음 굴뚝 뒤로 숨으면 더 이상 쫓아오지도 않았다.

일단 취학 통지서에 이순이로 되어 있으니 이대로 입학한다. 부모님께 말씀드려 빨리 면사무소에서 호적 정정 신청을 하라고 해라.”

내용은 모르지만 이름이 바뀌었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주태백 이장님이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한동네 순이순임이를 헷갈려서 그렇게 면사무소에 등록한 것 같다. 그때부터 학교에서는 이순이, 집에서는 이순임으로 두 개의 이름 6년 동안 살게 되었다.

 

그리고 6년 후 졸업식.

졸업식을 마치고 중학교 입학을 기다리는 어정쩡한 어느 날, 6학년 담임님의 특별호출을 받았다. 선생님과의 독대라는 자체가 기이할 만큼 드문 기회여서 그 설렘과 두려움의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교무실과 보도 사이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한적한 장소, 유리창 너머 버드나무 가지에 봄물이 오르는 중이었다. 고개를 들자 유리창으로 에워싸인 낯선 풍경에 쩔쩔매기도 했던 그 짧은 긴장의 순간들.

이순이, 너 원래 이름이 이순임 맞지?”

…….”

왜 대답을 못 혀? 맞어, 안 맞어?”

맞는디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인처럼 말했다. 시험지에 이름을 잘못 쓴 사람처럼 부끄러운 기억들이 가렵고 화끈화끈 얼굴로 올라온다.

, 중학교에 들어가면 원래 이름대로 이순임으로 정정된다. 알았지? 절대로 잊어버리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이순임이다.”

.”

“6년 동안 자기 이름도 못 찾고……, ! 니 잘못은 아니지만부모님두 엥간하다. 입학 성적은 엄칭이 좋더라. 700명 중에 7등이니 11반 중 7반의 1등이야. 그런 줄 알고.”

……니에.”

이미 초등학교 졸업장, 상장 모두 이순이로 받고 난 후의 일이다. 졸업장이나 상장을 고쳐달라는 말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아무한테도 그 사실을 말도 하지 않았다. 그미가 공부를 잘 한다는 사실도 솔직히 처음 알았다. ‘10월 유신홍보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있던 그해 이른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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