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님, 우리이장님]“올 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쓰레기분리수거 시설을 만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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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님, 우리이장님]“올 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쓰레기분리수거 시설을 만들겁니다”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01.1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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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가화1리 정해영 이장
가화1리 정해영 이장은 올 해 안으로 쓰레기분리수거 시설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4H공부방을 드나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화1리 정해영 이장은 올 해 안으로 쓰레기분리수거 시설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어 4H공부방을 드나드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잔여 임기 1년만 하고 그만 두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마을 개발위원회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아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올 해로 14년째 옥천읍 가화1리 이장을 맡고 있는 정해영(66) 이장.

언뜻 들으면 너무 오래 이장을 맡는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건 마을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정 이장 역시 이렇게 오랜 세월 이장을 맡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임 이장이 교통사고로 자리에 물러나면서 얼떨결에 맡게된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게 됐다. 정 이장은 일찍이 서울에서 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동안 고향 가화리와는 거리를 두고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서울로 떠나기 전 가화리에서 4-H회장을 맡아 젊음을 불태운 적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서 정 이장을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왔다. 마침 고향에 볼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내려 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을에서 정 사장을 가화1리 이장으로 선출했으니 그리 알고 고향으로 내려 와라고 통보를 한 것.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당사자 의견도 들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장을 하라는 저의(?)가 궁금했다. 그때 마을 주민이 귀띔을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정 사장만한 인물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정 사장에게 이장을 맡겼으니 그리 알아라.

하는 수 없었다. 그렇잖아도 이른 시일 내에 고향에 내려 갈 생각이었는데 몇 년 일찍 내려간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고향 가화1리로 유턴을 했다.

고향으로 돌아 온 정 이장의 발걸음은 바빠졌다. 그동안 마을 구석구석에 산적해 있는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꼼꼼이 챙겨 나갔다.

그 중에서도 철도방음벽설치를 비롯한 지하차도 조명교체, 마을벽화그리기, 외곽도로 공원화, 마을회관 태양광 설치 등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이러한 일들은 저 말고도 다른 사람이 이장을 맡았더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라며 겸손해 하는 정 이장은 올해에는 마을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 쓰레기 분리수거 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아파트가 많은 동네여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분리수거용 쓰레기가 발생한다고 했다.

 

철길에 모여 있는 아이들 보고 ‘4H공부방열어

언젠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오는데 철도에서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위험한데 왜 저기에 모여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리고 단순히 불량 학생으로만 판단을 했죠, 그래서 다가가 왜 여기 모여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안하는 거예요. 다시 한 학생을 가리키며 물었더니 갈데가 없어 여기 있다는 겁니다

순간 이 말을 들은 정 이장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리고 머리에 문득 스치는 무엇이 있었다. ‘맞아, 이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공부방을 만들어야지하는 생각.

다음 날 마을 개발위원들과 상의를 마친 정 이장은 지금의 마을회관 2층을 ‘4H공부방이라는 이름을 짓고 방과 후 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을 불러 들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이 사업만큼은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때 제가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그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기성세대로써 너무도 큰 죄를 지었을거라는 생각 밖에 안듭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13년 전 정 이장에게 도움을 받았던 아이들 가운데는 이곳 옥천군청과 안산시청에서 정식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여기에 박사학위를 받아 대덕연구단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아이도 있다. 또 부사관 6명과 대학에 재학 중인 2명도 정 이장의 손길을 거쳐간 아이들이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어버이 날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모르고 지내는데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 올 때면 순간 마음이 울컥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만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때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공부방 교사는 인근 부대 군인들

공부방을 운영하다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아이들을 가르쳐 줄 선생님 확보가 최대 고민거리. 하지만 이 문제 역시 인근 부대 장병들이 자원봉사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돌아가며 교사를 해주고 있어 큰 짐을 덜고 있다. 특히, 장병들 가운데는 하버드대 재학 중인 학생 카이스트에 재학 중인 학생 등 탄탄한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교사로 봉사를 하고 있어 교육의 질 또한 어디에 내놔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매월 공부방에 들어가는 80여 만 원에 이르는 운영 비용. 이 문제 역시 의류업을 하고 있는 정 이장으로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외부에 기대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총 328명을 배출하면서 저는 처음부터 제 힘으로 공부방을 꾸려 나갈 생각을 했습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운영을 할 뿐 앞으로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한 해는 공부방을 열지 못했습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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