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이 지극한 의지의 소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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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이 지극한 의지의 소년(2)
  • 조종영 작가
  • 승인 2021.01.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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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重峯) 조헌(趙憲) 선생 일대기 지당에 비 뿌리고(3)
조헌의 부친 증이조판서 계현공 묘소(김포). 세 분의 묘가 品字 형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조헌의 부친 증이조판서 계현공 묘소(김포). 세 분의 묘가 品字 형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조헌이 열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뜻밖에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만 같았다. 어린 마음에 부모를 잃은 충격은 대단히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고 하는 행동이 어른과 같았다.


그 후에 계모를 맞이하게 된 조헌. 계모 김 씨는 성격이 엄하고 조헌에게는 매우 까다롭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서운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새어머니를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하고 부름이 있으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계모 김 씨는 자기 비위에 맞지 않으면 몹시 나무라고 꾸짖는 것이 예사였지만 조헌은 자신의 정성과 효성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고 오히려 두려운 마음으로 대했다.


하루는 그가 외할머니 댁을 가게 되었다. 어미를 잃은 어린 손자를 보는 외할머니의 마음은 한없이 가엾고 안쓰러웠다. 더구나 새로 들어온 계모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더했다. 외할머니가 그에게 계모의 행실을 들어 울면서 말하기를 “너의 어미가 너를 대하는 것이 이러하니 장차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라고 하시며 크게 근심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헌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뒤로는 한동안 외가를 가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외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찌 오랫동안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헌은 이렇게 대답한다. “전에 왔을 적에 할머니께서 제 어머니의 잘못을 들어 말씀하시니, 자식으로서 그 말씀을 차마 들을 수 없어 오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이 말을 듣고 손자의 어진 마음에 크게 감복하고 다시는 계모 김 씨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 조헌이 통진 현감으로 있을 때에 부친을 여의게 되는데 그 뒤로도 계모 김 씨는 더욱 더 엄하게 대해서 조그만 잘못이 있어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지극한 효도로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조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계모가 혹 몸이 불편하기라도 하면 의관이나 신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바삐 돌아다니며 시중을 들었고 밤낮으로 내실 문 앞에 엎드려 있기도 했다. 


계모 김 씨는 조헌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뒤에야 그가 진정한 효자임을 깨닫고 친자식을 잃은 것과 같은 슬픔에 싸여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세상에 어찌 다시 있으리오. 슬프도다! 이 자식이 진정 내 아들이다. 생모는 단지 낳아 주었을 뿐이다.”


계모 김 씨는 조헌이 순절한 8년 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을 때까지 조헌을 애도하기를 자기 일처럼 했다고 한다.
조헌은 대개 평일에는 묵묵하며 마치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아서 보는 사람이 두려워했다. 그러나 부모 곁에 있을 때에는 상냥하게 대해 화기가 넘쳐흘렀다. 그러므로 계모 김 씨는 네 명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하루도 조헌 댁에 의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이와 같이 조헌의 효(孝) 실천은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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