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하는 설
상태바
퇴색하는 설
  • 동탄 이흥주 수필가
  • 승인 2021.02.18 13: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춘이 지나자 매서운 추위도 주눅이 들었다.

명절 지나고 나면 18일이 우수, 봄은 점점 곁으로 오고 있다.

머지않아 동토가 녹아내리고 대지엔 온기가 돌 것이다.

세상은 연두로 덮일 것이며 농부는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갈 것이다.

겨울 때를 씻어버리고 심호흡 한번 크게 해보자.

코로나로 만신창이가 된 올 설은 한기가 돌았다.

코로나가 상전인 요즘, 지침에 따라 손주, 며느리, 사위, 딸 다 떼놓고 아들 둘만 와서 차례를 지내고 갔다.

설에 가족이 다 모여 귀여운 손주들 세배 받는 기쁨은 내년으로 미뤘다.

세배 뿐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작년부터 못하고 두 손을 붙들어 맸는데 올해도 또 다 버리고 집콕, 방콕이나 해야 될 것 같다. 거리두기, 마스크쓰기, 모임 안 하기 등등 온 국민이 온갖 고통 다 감내하며 국가시책에 군소리없이 고분고분 따라 코로나 방역에 협조를 잘 했다.

하지만 아직도 코로나 기세는 등등하다.

이런 걸로 근본적인 코로나 퇴치는 되지 않는다.

모든 게 임시방편일 뿐이다.

백신접종만이 이걸 잠재울 것이다.

올해 정신 바짝 차리고 계획대로 백신접종을 완벽하게 해서 금년 하반기나 내년엔 제발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남보다 먼저 안정을 가져오는 나라가 자랑스러울 것이고 경제도 먼저 훈풍이 불 것이다.

작년부터 백신접종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감염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백신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설은 코로나가 아니라도 이젠 퇴색한 옛 풍습으로만 남으려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속에서 명절의 생각도 삼일이나 잘하면 사오일 쉬는 연휴의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나이 먹은 사람이 옛날얘기 자꾸 하면 듣기 싫어 하지만 그래도 잠깐 설이야기를 해야겠다.

지금 차례 상 차리는 걸 보노라면 각자가 각색이다.

씨족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다르고 각자 자기 마음대로다.

요즘 가정에서 차례 올리는 걸 보면 일반 밥상보다도 못하다.

도저히 차례 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정성만 들이면 된다고 하지만 정성이 들면 차례 상도 제대로 차릴 것이다.

전국으로 맛집 찾아다니며 이름난 음식점 앞에 표를 받아 줄을 서는 게 요즘의 풍습이다.

사람밥상은 산해진미에 푸짐해졌는데 조상님 차례 상은 초라하다 못해 빈상이 되어간다.

차례 상에 과일도 대추, 밤, 감, 배(조, 율, 시, 이 棗栗枾梨) 사과, 호두 외엔 안 썼지만 지금은 안 오르는 과일이 없다.

전통과일은 빠져도 수입과일인 바나나도 올리고 수박 포도 등 산 사람이 먹는 것이면 다 오른다.

상위에 진설(陳設)하는 방식이나 순서도 제각각이다.

정해 놓은 규범이 없다.

있어도 모른다.

아무 거나 올리고 아무렇게나 놓으면 되지 뭘 따지냐는 식이다.

학교에서 외국어나 수학문제는 가르쳐도 제상 올리고 차리는 법은 안 가르친다.

사는데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직업 구하는데 도움이 될 리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소풍날 기다리듯 명절은 살기가 고단할 때에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지 지금이야 매일이 명절이다.

모든 게 넘쳐나는 세상에 사실 명절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여느 날과 다르다면 조상님께 차례 상 올리는 것일 텐데 지금 이걸 제대로 하는 집도 흔치 않으니…

모든 규범이나 관습도 나에게 맞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맞춰서 변해간다.

귀찮고 복잡하고 하기 싫은 건 사라져 가기 마련이다.

요즘은 사람이 세상을 뜨면 거의가 화장장 행이다.

화장을 하면 누울 자리가 산사람 하나 앉을 정도면 충분하다.

땅에 묻는 작업도 삽 한 자루 들고 잠깐이면 끝나고 벌초할 걱정도 없다.

선산이 없으면 공영납골당 같은 곳으로 가면 된다.

모든 게 생략과 ‘간편’으로만 흐르는 시대에 요량 흔들고 상여 메고 산으로 가겠는가.

화장에는 아직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백 프로 화장장으로 가야 한다고.

요즘은 종중에서 위 조상 벌초하러 나오라거나 종사로 소집을 하면 나이 먹은 사람들도 말을 안 듣는다.

앞으로는 부모 외에는 알지도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족보 놓고 내 조상 찾아보던 것도 옛 이야기가 됐다. 

명절이 퇴색하건 조상을 위하는 마음이 희미해져 가건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조류이다.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가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