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태권도연맹 공인 7단 나일한 사무차장(시범단 단장)-“태권도는 나의 인생이자 삶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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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태권도연맹 공인 7단 나일한 사무차장(시범단 단장)-“태권도는 나의 인생이자 삶의 전부입니다”
  • 김병학기자
  • 승인 2021.06.24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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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나일한 세계태권도시범단장은 “오늘의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태권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태권도를 세계만방에 알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인식시킬 것인가 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WT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나일한 세계태권도시범단장은 “오늘의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태권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태권도를 세계만방에 알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인식시킬 것인가 하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동네 선배로부터 권유받고 태권도 시작
11년째 WT 사무처장 맡아 활동

사람은 태어나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좌우된다. 비뚤어진 성격의 친구를 만나면 자신도 비뚤어지고 진정한 친구를 만나면 자신 역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그렇다면, 삶에 있어 스승은 어떤가. 스승이야말로 참된 길잡이요 진정한 조력자다.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처장이자 시범단 단장을 맡고 있는 나일한 씨(59)의 경우가 그렇다.

옥천읍 금구리가 고향인 나 단장의 인생은 스승과의 만남에서 본격적인 항로가 개척되었다.

나 단장 나이 여섯 살 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운동 하나쯤은 시켰다. 그것이 태권도가 됐든 합기도가 됐든 또는 검도가 됐든.

나 단장 역시 조금은 이른 여섯 살때부터 태권도장의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태권도의 거목으로 자리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태권도가 좋아서 도복을 입었을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초등학생이라해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한 체력과 선천적인 운동기질을 타고 태어난 나 단장은 단박에 동네 선배 눈에 띠었다. 이때가 삼양초등학교 5학년 시절.

“일한이 너 태권도 한번 해보지 않을래?”

그렇게 해서 나 단장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옥천중을 거쳐 서울체육고와 경희대학교에서 태권도를 전공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열린 전국체육대회에서 전 부문 금메달을 딴 게 나름 태권도 외길을 걸어 온 열매로 남는다. 이에 힘입어 1982년 태권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최우수 선수로 선발되기도 했다.

나 단장이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가 동네 선배를 만난 것이라면 이후 나 단장을 오늘의 나 단장이 되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현 WT(World Taekwondo) 총재로 있는 조정은 스승을 만난 것이다. 다시 말해, 조 총재를 만나고부터 나 단장의 태권도에 대한 방향이나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단순히 태권도라는 운동에만 전념했다면 조 총재를 만나고부터는 그러한 태권도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주된 목표로 바뀌었다. 실제 경기를 치르는 일은 후배들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지만 세계를 상대로 태권도를 알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 총재의 권유로 WT의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처장을 맡게 됐다. 벌써 11년째다.

그렇다고 나 단장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한창 잘 나가던(?) 대학 선수 시절, 허리 디스크와 발목뼈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로서의 삶은 접어야만 했다.

중국 올림픽 국가대표 훈련 국내보다는 중국에서 더 유명

이후 나 단장은 개인사업에 진출했다. 장소는 ‘중국’.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공인 7단의 실력 소유자인 나 단장을 중국태권도협회에서 주석(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임원들이 찾아왔다. “중국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기술고문을 맡아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수 차례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간청에 나 단장은 어쩔 수 없이 승락을 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나 단장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연습중인 중국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에서는 ‘로이 한’(나일한)이라면 최소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축구가 히딩크’라면 ‘태권도는 로이 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운다.

“당시 저의 작은 노력으로 중국 정부에서는 저를 태권도의 1인자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보다는 오히려 중국에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웃음)

전북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에서 세계태권도시범단원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이들 단원들은 지난 16일 미국 갓텔런트 초청 시범공연을 보여 70억 세계 인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인공들로 17일 오후 태권도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시범을 보였다.
전북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에서 세계태권도시범단원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다. 이들 단원들은 지난 16일 미국 갓텔런트 초청 시범공연을 보여 70억 세계 인구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주인공들로 17일 오후 태권도원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시범을 보였다.

28개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올림픽 시범공연 초청 받아

나 단장에게 있어 태권도는 단순히 체육 종목의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때 처음으로 태권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 아니,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라는 사실보다는 채택되도록 나 단장의 숨은 노력과 보이지 않은 땀방울이 열매를 맺었다고 하는게 더 적절한 표현일게다. 그러한 이유로는 중국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킨 결과가 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실로 중국 태권도 역사상 20년 만에 이룬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때 전체 종목 28개 가운데 유일하게 태권도가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조직위에서 시범공연 초청을 받을 정도로 이미 나 단장은 전 세계적으로 ‘진정한 태권도인’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었다. 이외에도 2018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북한 태권도 팀과 함께 남북한 시범공연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이나 스위스와 같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세미나와 같은 초청을 받아 주제발표를 할때면 대한민국을 넘어 동양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는 나의 모든 것 봉사하며 사는 삶 살고파

보통 사람같으면 직업을 바꿔도 몇 번은 바꿨을만한데 지금의 나 단장은 50년 넘는 세월을 오직 태권도라는 외길만 걸어왔다. 한번쯤은 후회를 할만도 한데 나 단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아니, 그럴 시간이면 한번이라도 더 연습을 하는게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권도는 저의 삶이자 모든 것입니다. 태권도가 없었다면 어쩌면 제 인생도 없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라는 나 단장은 지난 세월 자신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봉사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봉사자의 삶이란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태권도를 세계만방에 알려 아시아의 변방국가인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하는 그런겁니다. 저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나 단장의 가족은 아내 오미희 씨와 선진 선민 두 딸 등 네명이다. 큰 딸 선진 씨는 북경 미술대를 졸업, 전공을 살려 미술계에서는 나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둘째 선민 씨도 북경 체육대를 졸업하고 북경체육대 외국인 홍보대사를 지내고 있는 정통 체육인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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