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양단(首鼠兩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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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양단(首鼠兩端)
  • 김병학 편집국장, 언론학박사
  • 승인 2021.12.0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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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한나라 경제(景帝) 때, 위기후 두영과 무안후 전분은 황실의 인척이었지만 사실상 서로가 서로를 못잡아 먹어 안달하는 앙숙 관계였다. 

어느 날, 전분이 연나라 왕녀에게 장가를 갔다. 그리고 성대한 축하연이 벌어졌다. 이때 전분이 술잔을 권하며 돌아다니자 모두가 일어나 공손히 술잔을 받았다. 이번에는 두영이 똑같이 했다. 그런데 모두들 일어나지 않고 앉아서 받았다.

그때 두영의 측근인 장군 관부가 이 광경을 보고 전분에게 술을 따랐으나 전분이 술잔을 받지 않고 술주정을 부리는게 아닌가. 결국 사람들은 다 돌아가고 축하연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전분은 화가 나서 관부를 감옥에 쳐넣고 말았다. 그래도 관부는 끝까지 잘못을 거부했다.

이 일은 마침내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황제는 대신들을 모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기로 했다. 

어사대부 한안국이 대답했다. “두영과 관부는 크게 공을 세운 사람으로 이번 일은 술좌석에서 벌어진 일에 불과합니다. 또 전분이 관부와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위험합니다. 폐하께서 옳은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다른 대신들도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자 황제는 화를 내면서 회의를 중지해 버렸다.

전분은 이러한 일로 황제의 마음을 괴롭힌 것이 부끄러워 재상직을 내려 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거기서 어사대부를 만나자 호통을 쳤다.

“이 일은 시비곡직이 분명하건대 그대는 어찌하여 쥐구멍에 머리만 내민 쥐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고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소”

두영과 전분이 살던 고대 중국사회나 최첨단 문명이 활개를 치는 지금이나 사람살이는 비슷한 모양이다. 그때도 시기와 질투가 있었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못하지 않는 세상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왜 어사대부는 전분의 말마따나 시비곡직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 못(안)했을까. 이유는 아마도 어사대부라는 사람이 두영과 전분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황제 앞에서까지도 우물쭈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대의 권력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명한 태도는 필요한 법이다. 그래야 훗날 벌어질 난국을 사전에 막을 수가 있다. 어사대부처럼 이쪽저쪽 살피다 보면 결국은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야 권력 잡을 일도, 필요도 없지만 일부 선출직 인물들을 보면 역겨움을 느낄 때가 수두룩하다. 분명 국민들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유독 그 사람만 맞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함으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국민들이 애먼 피해를 보고 만다. 이 역시 그 사람은 국민들의 사정이야 어찌됐건 가능한 결정권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순간을 모면함으로써 자신의 앞길에 나타나는 걸림돌을 미리서 치워야 한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소인배적인 사고의 소유자다.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작금의 우리 사회가 이토록 헝클어지고 꼬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지닌 자리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權不十年, 花無十日紅). 당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 순간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그때 그 사람은 영원한 배신자와 역적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어사대부와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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