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군 풍수적 마을 유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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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풍수적 마을 유래(2)
  • 옥천향수신문
  • 승인 2016.08.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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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연 충청현공풍수연구원장

옥천군의 입수되어 들어온 맥은 보은 속리산에서팔음산을 경유해서 들어온 맥으로서 청산과 청성, 안내, 안남이 한맥이고, 덕유산에서 대둔산을 경유하여 서대산과 장룡산으로 들어온 맥은 옥천읍과 이원면, 군서면과 군북면 동이면의 맥이 다른 것이다. 

청산면 일대의 풍수지리학적으로 연관된 마을 유래

청산면 한곡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곳 마을이 옛 이름으로 ‘한골’과 ‘문바위’로 불리고 있는데 한자를 쓰면서 ‘한골’을 발음대로 한곡(閑谷)이라 썼으나, 이 한골의 원뜻은 옛글로 ‘한’은 크다는 뜻으로 ‘골이 크고 넓다’는 말이 되므로, 뜻대로 한다면 대곡(大谷)이 될 것이다. 한곡이라 한 것은 ‘한가하고 조용한 골짜기’ 또는 ‘한밭(大田)’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문바위는 마을 뒤에 큰 바위들이 여러 개가 서로 기대어 서있어 마치 문과 같이 생긴 바위라 하여 문바위라 부른다.

문바위(門岩)에서 300m 동남쪽 산비탈(장군봉)엔 장수발자국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남아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하늘나라 재상의 아들 웅인이 금기를 어기고 마을사람을 괴롭히는 괴물을 죽이려고 무술을 썼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웅인을 사랑했던 옥황상제의 딸 계화도 내려와 함께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비스듬히 경사진 곳에 사람모양의 바위 두개와 웅인이 괴물과 싸울 때 생긴 발자국 모양이 새겨진 바위가 놓여 있다. 한곡리는 장군봉의 기운을 받은 결과로 얼마 전에 별세하신 박준병 대장이 탄생 된 듯하다. 문바위 뒷산에 묘가 하나 있는데 최시형의 묘라고 하여 얼마 전까지 마을에서 사초와 벌초를 했는데 최시형의 묘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아마 최시형교주의 아들인 최봉주의 묘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청산면 대덕리 유래를 보면 덕을 지닌 선비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 하여 대덕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덕리는 큰 비암티(큰+뱀=大+巳) 즉 ‘대사(大巳)’라 부르고 덕우리의 ‘덕’은 고어에서 언덕이 되므로 덕(언덕)+우리(집) =‘언덕집’이란 말이 되어 언덕위에 마을이 있다는 뜻이 되나 후에 음운 변화하면서 ‘덕우리’ ‘덕골’이라 하여 이를 한자화하면서 큰덕(德), 굴곡(谷), 덕곡 이라 부르다가 두 마을을 합할 때 대사의 ‘大’자와 덕곡의 ‘德’자를 따내 대덕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청산면 삼방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이 삼거리(三巨里)가 되어 명티리 달박골을 거쳐 상주군 화동면으로 이르는 명티 고갯길, 북으로 법화리 숫골에서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로 넘는 백자 미티와 장누골의 별티(별재)를 거쳐 상주군 모서면에 이르는 고갯길 등이 있어 삼방리라 하였다. 

안내면 일대의 풍수지리학적으로 연관된 마을 유래

안내면은 보은의 자식 산에 해당되는 산에 금이 많이 묻혀 있다는 금적산의 기운과 안내면의 진산인 대덕산의 강한기운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봉 조헌선생은 임진왜란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 왜군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히고 금산전투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중봉(衆峰) 조헌(趙憲), (1544~1592)선생은 조선왕조 중기의 문신으로 우리 유학의 도통을 계승한 유학자이며 경제사상가이자의병장이다. 1584년 겨울 충청도 옥천군 안읍 밤티의 궁벽한 산골로 은거하여 후율정사를 짓고 생애 마지막 7,8년을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강학에 정진하는데 힘썼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중기 중봉 조헌 선생이 보은 현감을 사임하고 후예 교육을 위해 이곳에 서당을 지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했고, 영규대사가 승병을 모집한 가산사 등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후율당은 1584년 중봉 조헌선생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이율곡 선생의 뜻을 계승하여 후진들을 가르쳤다 한다. 이와 같은 업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금적산과 안내면의 진산인 대덕산의 기운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안내면 면소재지 현리는 야트막한 뒷산 수북봉의 널따란 치맛자락 끝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동네로서 아주 편안한 마을이다.

당 아래 마을로 들어서는 한길가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 동네를 굽어 살펴 달라고 하늘에 제를 올리던 신성한 터가 있다. 그곳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세 그루서 있고 세 덩어리 바위에 마을의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가 있다. 현리의 앞산인 안산은 서낭봉이 있는데 현재 지도상에는 서남산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제를 모시던 서낭봉이 옳으며, 대청댐으로 침수된 서낭댕이라는 고을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시루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옛날 조상님들이 아들을 낳아달라고 기도하던 곳이라는 전설개구리가 용을 피해 도망갔다는 피아골이 있다. 동대리의 뒷산은 마을 북쪽에 안내면 진산인 덕대산(575m)이 있고 정상에 삼국시대 성터가 남아있다. <다음호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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